죽어서 시가 되는 삶이 있습니다

197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시단에 등단한 정휴 스님이 선사들의 열반 시를 모아 엮은 시집. 여행을 떠나는 사람과 같이 임종을 준비하는 떠남의 언어가 있고_ 고향으로 돌아가는 진리회귀의 영혼의 모음이 담겨있는 시들을 선별해 수록했다. 이른 새벽 나를 부르는 솔에 깨어보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었다/밤새 머물고 있던 어둠이 떠나는 소리였고 별들이 빛을 거두어 하늘로 돌아가는 기적이었다... <이 몸에는 주인이 없네> 중.

서문 = 4
열반송
1
이 몸에는 주인이 없네 = 15
버리면 자기가 보이네 = 16
봄 바람은 잔설을 쓸고 = 17
한평생이 한바탕 꿈이었네 = 18
살아서 天堂도 좋아하지 않고 죽어서는 지옥도 두려워하지 않네 = 19
영혼은 인연을 따라가네 = 20
마음에 따라 얼굴이 바뀌네 = 21
영혼은 미련없이 떠난다 = 22
꿈같은 육십칠 년 = 23
달은 차가운 연못에 빠지고 = 24
가고 옴이 없는데 누가 또 오는걸까 = 25
여러분들 잘 있게 = 26
그대는 혼자 떠나네 = 27
인연따라 다시 꽃으로 오는가 = 28
바람은 벌판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 = 29
무쇠나무에서 꽃이 피네 = 30
나고 죽음이 없네 = 31
죽어도 달은 뜨더라 = 32
비바람을 꾸짖네 = 33
2
불길이 샘물 속으로 가고 있다 = 34
눈 위에 서리가 내리네 = 35
그대 무릎 베고 빈몸으로 가네 = 36
없는 가운데 길이 있다 = 37
한 줄기 바람처럼 왔다가 = 38
본래 내 고향일세 = 39
몸과 마음에 생사를 받지 않아 = 40
이 몸 벗고 고향으로 돌아가네 = 41
무슨 인연으로 이 세상에 왔는가 = 42
내 뼈와 살을 숲 속에 버려라 = 43
입을 벌리면 목이 잘리네 = 44
저 허공을 꿰뚫어라 = 45
봄이 와도 꽃이 피지 않고 = 46
구름은 텅비어 있는 것 = 47
헤어지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네 = 48
3
천지는 면목이 없다 = 49
달은 일천강에 잠기고 = 50
생사마저 이르지 못한 곳 = 51
그 죄업이 하늘에 넘치네 = 52
슬프다 종문의 큰 도둑이여 = 53
도솔천이 어디냐 = 54
이 마음이 내집일세 = 55
내 몸은 본래 내 것이 아니네 = 56
오고감에 이 관문을 벗어나지 않아 = 57
팔십 년 생애가 허공의 꽃 = 58
성인과 범부를 죽여라 = 59
붉은 화로에 한 점 눈송이 = 60
나고 죽음의 속박을 끊고 = 61
산 채로 묻어다오 = 62
4
죽음이 오니 즐겁구나 = 63
잿더미 속에 무슨 사리가 있으리오 = 64
불구덩이 속에 몸을 숨긴다 = 65
바람이 거문고를 탄다 = 66
오늘에야 일을 마쳤네 = 67
떠난줄 알았더니 본래 그 자리네 = 68
나무 사람이 피리를 불고 = 69
바람과 소요하다가 오네 = 70
팔십 년이 꿈이었네 = 71
진리의 몸에는 태어남이 없네 = 72
텅 빈 산이 진리의 몸이네 = 73
가고 옴에 걸림 없어 = 74
불 속에 한 송이 눈 = 75
눈이 멀고 벙어리가 되어야 = 76
5
불 속에 웃고 있는 참된 사람 = 77
푸른 벼랑에 서서 = 78
마음달이 밝아서 = 79
인생이란 타향살이 = 80
맨발로 수미산에 올라 = 81
모든 인연 쉬어 버리고 = 82
그림자를 떨어 뜨리고 = 83
부처와 범부도 허망한 것 = 84
천당으로 가지 않고 지옥으로 가네 = 85
인간의 부귀영화 마치고 = 86
가죽 속 뼈다귀를 던져 버리니 = 87
선시
1
중은 졸고 새는 지저귀고 = 90
춘정을 못이겨 우네 = 91
지팡이 청산에 걸어두고 = 92
나를 찾지만 = 93
누가 西來意를 묻는다면 = 94
얻고 잃는 것 놓아버려라 = 95
먹지 못한 두견이 우네 = 96
이 육신 벗고 어디로 가셨는가 = 97
복사꽃 피고 = 98
할 일 없어 = 99
할 일 없는 가운데 할 일 있어 = 100
온누리가 꿈이다 = 101
죽음이 없는데 삶이 있으리요 = 102
말 없이 서로 보고 미소만 짓네 = 103
어느 곳에서 깨달음을 찾을건가 = 104
가는 곳이 그대로 열반이네 = 105
고통이 이를 수 없는 곳 = 106
석가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 = 107
2
발자국 옮기면 산빛이 따라오고 = 108
꿈 속에 지냈는데 = 109
일천성인 밖에 노니 = 110
전체로 살아야 극락이 되네 = 111
실상이 그대로 생멸이네 = 112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 113
봄새가 누설하고 있네 = 114
만물의 주인이 되어 = 115
신령스런 옛주인 = 116
그림자 없는 나무 = 117
노래 끝나자 날이 밝네 = 118
꿈 속에서 서방으로 가네 = 119
산새는 중이 선정에 든 것이 싫어서 = 120
귀먹거나 눈멀지 않네 = 121
내 몸속에 천지가 있는데 = 122
천진이 풍류다 = 123
얼굴 가득 봄바람 = 124
물건마다 진여를 나투네 = 125
나는 너를 여의지 않았다 = 126
문을 여니 꽃이 다가오고 = 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