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대사는 극락에 갔을까?
서산 대사는 극락에 갔을까?
역사학자 서길수 교수가 14년 동안 이 문제를 연구하여 모두 100명의 극락 간 사람들을 모아 책으로 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조 말까지 49명을 묶어 상권을, 일제강점기 이후 현재까지 51명을 모아 하권으로 나누어 1,000쪽이 넘는 결과를 발표하였다.
- 머리말 : 현대에 맞는 붇다의 가르침
<앙굿따라 니까야> 「8가지 계행에 관한 경」에 붇다의 가르침은 “① 살아 있는 지금 이득이 있는 것이고, ② (과거ㆍ현재ㆍ미래) 시간을 뛰어넘은 것이고, ③ ‘와서 봐라’ 할 만한 것이고, ④ 최상의 목표(니르바나)로 이끄는 것이고, ⑤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스스로, 홀로)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엮은이는 이 말씀을 바탕으로 현대는 정토법문이 가장 알맞은 가르침이라고 강조한다.
➀ 정토법문은 살아 있는 지금 이득이 있는 안심법문이다. 극락 가는 목표가 있으므로 살아 있는 지금 편안한 마음을 갖는다.
➁ 정토법문은 (과거ㆍ현재ㆍ미래) 시간을 초월한 것이다. 염불을 통해서 끊임없이 과거ㆍ현재의 죄업을 소멸시키고, 남은 업은 가지고 극락 가 수행하여 상품상생을 거쳐 끝내는 성불하기 때문이다.
➂ 정토법문은 ‘와서 봐라’ 할 만한 것이
다. 바로 목숨이 다할 때 아미따붇다가 맞이하여 극락에 가는 본보기들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극락 간 사람들(往生)>을 모은 이야기가 바로 ‘와서 봐라’라고 할 수 있는 증거들이다.
➃ 정토법문은 최상의 목표로 이끄는 것이다. 염불수행자가 극락에 가면 물러나지 않는 자리에 오른 것이므로 끝내는 성불하게 된다. 이것보다 더 높은 목표는 없다.
⑤ 정토법문은 슬기로운 자라면 누구나 (스스로, 홀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정토법문에서는 선사들의 야릇하고 아슬아슬한 법거량이나 조사들의 공안을 들먹이지 않고, 오로지 붇다의 말씀에 따라 수행한다. 그리고 심지어 슬기롭지 못한 사람도 염불 수행과 아미따붇다의 도움을 받아 극락에 가면 마침내 깨달아 괴로움의 바다를 여읠 수 있다.
정토수행에서 중요한 것은 염불하면 극락에 간다는 믿음(信), 그 극락에 가겠다는 스스로 바람(願), 극락을 가기 위해 열심히 염불(行)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들이 믿음과 바람을 갖는데 가장 크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이미 ‘극락에 간(往生) 사람들’ 이야기다. 정토삼부경이 극락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경전이라면 ‘극락 간 사람들 이야기(往生傳)’는 경전에 나온 말씀을 믿게 하는 가장 좋은 감로수다. ‘나도 그렇게 하면 갈 수 있다’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 신라시대 극락 간 사람들(8명)
삼국시대는 원효 대사를 비롯하여 8가지 사례를 소개하였다. 그 가운데 6가지 사례는 모두 <삼국유사>에 나온 것으로 이미 많이 소개되어 알려진 이야기들이다. 원문을 꼼꼼하게 다시 우리말로 옮기고, 원효대사는 <무량수경 종요>와 <불설 아미따경 소>를 분석하여 “686년, 원효 대사는 무량수국으로 갔다”고 판단을 내렸다. <삼보감응요약록>에서 「초기경전(아함경)」 읽고 나서야 극락이 받아 준 신라 스님 유(兪)」를 발굴한 것은 큰 소득이었다.
- 고리(高麗)시대 극락 간 사람들(19명)
고리(高麗는 당시 ‘고리’라고 읽었다) 시대는 모두 19가지 사례를 발굴하였는데, 고승 이야기 12건은 건봉사를 비롯하여 각지에 남아 있는 비문에서 찾아냈다. 이 시대 극락 간 사람들 가운데 특히 인상 깊은 7가지 사례는 당시 벼슬을 한 관리나 집에서 수행한 부녀들인데 모두 국립박물관이 간직하고 있는 무덤돌(墓誌)에서 발굴하였다
화엄종인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천태종을 세워 선(禪)과 교(敎)를 합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말년에는 “해인사에 내려가 염불하여 극락에 간 사실”을 밝혔다. 보조국사 지눌도 화엄과 선에 정통한 스님이었지만 궁극적으로 가는 길은 모두 염불을 방편으로 하였으며, 그 방편을 제시한 것이 <염불요문>이었다. 엮은이는 “보조국사가 스스로 무심염불 단계였다면 극락 가서 진여염불을 더 수행할 것이고, 진여염불 단계였다면 단박에 상품상생에 태어나 불퇴전을 이루었을 것이다”라고 평가하였다.
백련사(白蓮社) 결사를 통해 천태종을 중흥시키고 염불하여 극락에 간 요세ㆍ천인ㆍ천책은 물론이고 고리시대 말 나옹화상도 극락 간 사람들에 올라 있다. 유명한 유학자 이색이 쓴 비문에 공민왕의 스승이고 조계종 종사인 나옹화상은 죽을 날을 미리 알았고, 입적하였을 때 산꼭대기에 오색구름이 덮였다고 썼는데, 이런 정황들은 염불행자들이 극락에 갈 때 나타난 현상이다. 특히 누이에게 염불을 권하며 보낸 편지에 “염불로 마음이 집중되면 일념(一念)에 들어가고, 계속하면 염불조차 사라지는 ‘무념처(無念處)’에 이르러 생사를 벗어난다”는 염불선 사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상에게 알리는 글」에서도 참선과 염불을 함께 지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엮은이는 “이와 같은 나옹 화상의 수행문과 입적할 때의 이적을 종합해 보면 극락 상품상생 증과를 얻었다”고 결론 지었다.
- 조선시대 극락 간 사람들(24명)
조선시대는 비석, 문집 같은 자료가 상대적으로 풍부해 24명의 극락 간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1) 염불하여 극락 간 스님들
조선 초부터 분명히 극락으로 간 스님의 기록들이 이어진다.
1433년, “시방이 푸른 하늘인데, 없는 속에 길이 있으니 바로 서녘 극락이다”라고 말하고 극락 간 함허 득통(涵虛得通),
1666년, 결가부좌하고 서쪽을 바라보고 합장한 채 입적한 수초 선사,
1741년, 30년 염불하고 하늘의 빛과 함께 극락 간 환몽대선사
1743년, 깨끗한 옷과 두건을 착용하고 몸을 돌려 서쪽을 보고 앉은 채 입적하자 온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상서로운 무늬의 찬란한 빛 일곱 가닥이 허공을 가로지른 명진 대사,
1750년, 면벽 좌선 그만두고 염불하며 입적한 연초 스님,
1790년, 하루 10,000번씩 10년 염불하고 극락 간 화엄 대가 설파당
1872년, 아미따경 사경, 1자에 3번 염불, 3번 돌기, 3번 절하고 극락 간 남호당 영기 스님,
그 가운데 1604년 법안종과 임제종을 이어받은 선사(禪師)지만 선ㆍ교학ㆍ염불을 수행법으로 체계화한 서산 대사도 있다. 서산 대사는 <선가귀감>에서 “(나모)아미따불 6자는 반드시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이다”라고 했고, “마명이나 용수가 모두 뛰어난 조사이지만, ‘극락 가서 태어나라’라고 마음 깊이 권하였는데, 내가 누구라고 감히 (극락) 가서 나기를 바라지 않겠는가?”라고 일갈하고, “합장하고 서녘 보고 앉아 마음을 모아 아미따붇다 염하네, 평생 꿈에도 생각하는 것은 늘 흰 연꽃 속에 머무는 것이네”라고 한 것을 보면 실제 염불하여 극락에 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화두 놓고 염불하세
조선시대 최고의 선승은 물론, 임제종의 정법안장을 받은 선사들까지 나이가 들어 공개적으로 수행법을 바꾸어 염불하여 극락 간 선객들이 여럿 나왔다.
백암당 성총(1631~1700)은 임제종 정법안장을 이은 선사였지만 63세 때 “나 태어난 지 63년 … 불자 휘두르며 한 강론 빈 혀만 놀렸고 게송 읊은 곳도 선에 헤살만 놓았데 … 이런 속에 마음 고요히 머문 채 서녘 갈 정토업 지극정성으로 닦으리라!”라고 해서 13세 출가하여 50년간 참선했지만, 확철대오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공개적으로 정토수행을 밝힌 <정토를 기리는 100가지 노래(淨土讚百詠)>을 내놓는다. 이 책 마지막 100번째 노래에서 “3번 되풀이하노니 절대 다른 교설은 없고 아미따불 한 구절이 극락 가는 씨앗이니라”라고 결론을 내린다. 온몸으로 겪은 수행 결과를 제자와 세상에 보이고 극락을 간 것이다.
무용 연수(1651~1719)도 선과 교에 능통한 임제종의 법통을 빛낸 선사였다. 19세에 출가하여 34년간 선과 교를 닦다가 53세가 되자 “부질없이 혀를 놀리기보다는 마음 기울여 염불하는 것이 낫다”라고 선포하고 용문 은봉암에 들어가 염불에 전념한다. 1724년, 아미따삼존상에 금칠을 하게 하고 온 마음을 다해 염불하며 극락으로 갔다.
용담 스님(1700~1762)은 휴정→언기의 법맥을 이어 선과 교에서 신묘에 이를 정도로 못함이 없었고, 강설하면 찾아오는 무리가 선상(禪床)이 부러질 정도라고 한 고승 대덕이 19세에 출가하여 33년이 지나 52세가 되자 “깊이 품은 업보 억지로 토해 대중에게 알리노니, 강단에서 거짓으로 놀리고 현묘하다 기이하다 설하였네, 경전보는 것도 젊은 날에는 되지만 머리 희면 도리어 염불이 마땅하네”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그리고 “9품 연꽃 자리에 먼저 올라 아미따불 옛 주인 우러러 마주하리라”고 다짐하고 열심히 염불하였다. 입적하여 “다비하는 날 밤 신비한 빛이 내원암 하늘에 두루 뻗치니 밖에 있던 사람들이 먼저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어 극락에 갔음을 알 수 있다.
3) 태조 이성계도 염불을
<염불을 널리 권하는 글(念佛普勸文)>을 써서 염불을 널리 편 명연 스님, <염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念佛還鄕)>를 펴내 정토를 보급한 기성 쾌선 스님, 극락 가고 바위에 방광비(放光碑)를 남긴 서봉 스님, 그리고 두 아들과 사위를 위해 염불하며 공중에다 “우리들도 이미 서녘 정토로 향하고 있다”고 소리친 조선왕조 태조 이성계 이야기도 실려 있다.
< 차례 >
머리말 6
고치고 더 보탠 판 머리말 34
첫째 마당 : 신라 시대 극락 간 사람들 41
▣ 삼국시대 극락 간 이야기 머리말 42
- 686년, 원효 대사는 무량수국無量壽國으로 갔다. 46
- 문무왕(661~681) 때 16관법으로 극락 간 광덕과 엄장 60
- 717년, 불상 남기고 정토로 간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64
- 경덕왕(742~765) 때 불보살이 극락으로 맞이한 포천산 다섯 비구 76
- 피리사 염불스님(念佛師)은 극락에 가셨나? 78
- 경덕왕(742~765) 때 계집종 욱면이 염불하다 서녘 극락으로 오르다. 79
- 초기 경전(아함경) 읽고 나서야 극락이 받아준 신라 스님 유兪 84
- 786년, 건봉사 만일연꽃모임이 극락에 새 연못을 만들었다. 88
둘째 마당 : 고리(高麗) 시대 극락 간 사람들 101
▣ 고리(高麗) 시대 극락 간 이야기(往生記) 머리말 102
- 건봉사 만일연회 아간의 계집종 왕생 106
- 939년, 여산 혜원 좇아 극락에 간 진공眞空 대사 110
- 945년, 대중에게 염불시키고 들으며 입적한 광자 대사 122
- 1101년, 말년에 해인사 내려가 염불하여 극락 간 대각국사 의천 140
- 1142년, 서쪽 향해 단정히 앉아 극락 간 묘응妙應 대선사 159
- 1174년, 서쪽을 향해 가부좌하고 합장한 채 극락 간 원각국사 165
- 1188년, 서쪽 아미따불상에 합장하고 극락 간 정각 승통僧統 175
- 1210년, 『염불요문』으로 많은 중생 극락 보낸 보조국사 지눌 180
- 1245년, 법화삼매로 극락에 간 만덕산 백련사 원묘국사 200
- 1248년, 극락에서 상품상생 얻어 세상 제도하러 간 백련사 2대 천인天因 216
- 1245년, 자성미타와 아미따염불을 함께 추구한 백련사 4대 천책(天頙) 224
- 1077년, 40살에 경전 읽고 염불하여 극락 간 재상 이정 229
- 1192년, 아미따불 염하며 극락 간 이일랑 선녀善女 238
- 1254년, 도움염불(助念) 받고 불보살을 염하며 극락 간 흥왕도감 242
- 1308년, 서쪽 향해 찬불하고 게를 읊으며 극락 간 정숙공 248
- 1318년, 죽기 직전 출가하여 극락 간 성공省空 260
- 1358년, 늘 염불하여 돌아가실 때도 염불한 개성군 왕씨 264
- 1376년, 염불마저 없어진 곳(無念處)이 생사 벗어난 곳-나옹 화상 271
- 1381년, 자녀 다 출가시키고 염불하여 극락 간 강양군 부인 293
셋째 마당 : 조선 시대 극락 간 사람들 299
▣ 조선시대 극락 간 사람들 머리말 300
- <조선왕조실록 1> 태상왕 이성계 “우리는 이미 서녘 정토를 향하고 있다. 302
- <조선왕조실록 2> 앉아서 생을 마친 염불행자 조운흘 305
- 1433년, 함허 득통 선사의 마지막 소리 “서녘 극락이로다” 310
- 1534년, 얼굴빛 생시 같고 상서로운 빛 하늘에 번진 야로 대사埜老大師 320
- 1604년, “나모아미따불” 6자는 윤회를 벗어나는 지름길-서산대사 326
- 1660년, 서쪽 바라보고 합장한 채 입적한 수초守初 선사 347
- 1662년, 3년 염불하고 연꽃나라(蓮花) 간 명조 대사 349
- 1684년, 서쪽 향해 앉아서 입적한 현변懸辯 스님 361
- 1700년, 『극락 기리는 100가지 노래』 편 성총 스님 365
- 1704년, 『염불보권문念佛普勸文』 낸 명연明衍 스님 극락 가셨나? 376
- 1689ㆍ1749년, 살아서 보살행을 행하고 극락에 간 본원 보살 384
- 1715년, 상서로운 빛이 100리 밖에서도 보인 도안 스님 389
- 1724년, 아미따 삼존불 금칠하고 염불하다 극락 간 선사 무용당 392
- 1741년, 30년 염불하다 가는 날 알리고 하늘의 빛과 함께 극락 간 환몽 대선사 402
- 1743년, 서쪽 향해 돌아가니 상서로운 7가닥이 …, 명진 대사 406
- 1750년, 면벽 좌선하다 염불하여 극락 간 설송당 연초 스님 411
- 1762년, 젊어서 참선ㆍ간경해도 늙어서는 염불, 용담龍潭 대선사 415
- 1765년, 기성 쾌선 대사 - 염불하여 고향으로 돌아가자(念佛還鄕) 439
- 1774년, 다비할 때 내쏘는 빛이 뭇 사람 눈에 비치니, 추파당 456
- 1790년, 하루 10,000번 10년 염불하고 극락 간 화엄 대가 설파당 462
- 1862년, 아이에게 염불 권하는 것 본받으니 음악이 하늘에서 - 자하自下 스님 470
- 1872년, 한 글자에 3번 염불, 3번 돌기, 3번 절한 아미따경 사경 남호당 영기 475
- 1879년, 3년 염불하여 극락 가고 방광비 남긴 청련암 서봉 스님 480
- 1886년, 건봉사 4회 만일회 베푼 벽오상 유총과 서녘 정토 492
| 발행일 | 2022. 11. 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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