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방대한 원자료 검토와 집요한 분석으로
초기불교 성전(聖典) 성립의 전 과정을 다시 묻다
불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 경전은 가장 기본이 되는 토대다. 그러나 정작 그 경전이 어떻게 성립했는가 하는 문제는 널리 알려져 있으면서도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초기불교 성전의 성립 연구』는 붓다의 가르침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정리되고 결집되었는가를 정면에서 다루는 본격 연구서이다.
이 책은 초기불교 시대의 제1차·제2차·제3차 결집과, 이를 통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는 경·율·논 삼장의 성립 문제를 일관된 주제로 삼는다. 저자 호진 스님은 여러 부파의 율장, 경장, 논서, 역사서와 여행기 등 관련 문헌을 폭넓게 검토하고, 각 자료를 서로 대조하며 통설처럼 받아들여 온 결집과 삼장 성립의 설명을 다시 살핀다. 이를 통해 무엇이 확인 가능한 사실이며, 무엇이 재검토되어야 하는지를 치밀하게 드러낸다.
원자료를 가능한 한 원형 그대로 확인하고, 선행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검토하는 이 책은 초기불교 성전 형성의 전 과정을 근본부터 다시 묻는 드문 성과다. 불교 문헌 연구의 기초를 다시 다지는 동시에, 불교의 역사적 토대를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는 역작이다.
■ 출판사 리뷰
‘불교 경전은 어떻게 성립했는가’
익숙한 통설을 넘어, 성전 형성의 실상을 다시 묻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붓다의 열반 뒤 제자들이 모여 경전을 결집했다’는 설명을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제1차 결집에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제2차 결집에서는 계율 문제가 논의되며, 제3차 결집에서는 교단의 정통성이 재정비되었다는 식의 개요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과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후대의 정리와 해석일까. 『초기불교 성전의 성립 연구』는 바로 이 오래된 물음을 정면에서 다시 묻는 책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근본부터 따져 묻는 본격 연구서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율장·경장·논서·역사서를 두루 대조하며
결집과 삼장 성립의 핵심 쟁점을 치밀하게 해부하다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결집 전승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 호진 스님은 여러 부파의 율장, 경장, 논서, 역사서와 여행기 등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폭넓게 검토하며, 문헌마다 다르게 전해지는 결집의 동기, 연대, 장소, 참석자, 과정, 결집 내용을 꼼꼼하게 대조한다. 그 결과 우리가 상식처럼 받아들여 온 설명들이 실제로는 복잡한 차이와 모순을 안고 있음을 드러내고, 경우에 따라서는 결집이라는 이름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할 문제도 있음을 보여준다. 통설을 반복하는 대신, 자료 자체를 통해 무엇이 확인 가능하고 무엇이 재검토되어야 하는지를 가려내는 작업이 이 책의 핵심이다.
초기불교 성전 연구에 평생 천착해 온
호진 스님의 문제의식과 15년의 공력이 응축된 역작
『초기불교 성전의 성립 연구』는 한 권의 학술서를 넘어, 오랫동안 이 문제를 붙들어 온 연구자의 문제의식과 공력이 응축된 결실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 호진 스님은 『무아・윤회 문제의 연구』로 한국불교계에 무아설과 윤회설의 양립 문제에 관한 논의를 촉발시킨,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학승(學僧)이다. 이 책에서는 초기 불전의 성립 문제가 현대 불교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가장 기본적인 과제라고 보고, 관련 자료를 가능한 한 원자료 그대로 검토하고 향후 연구자들 또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경전 결집 과정에 대한 단순한 정리가 아니라 자료와 해석을 다시 검증하고, 기존 연구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짚어내며 앞으로 더 천착해야 할 지점까지 제시한다. 호진 스님의 15년 연구 성과가 고스란히 담긴 이 책은 초기불교와 불교 문헌학 연구의 토대를 다시 다지게 해주는 드문 역작이라 할 만하다.
■ 저자 소개
지은이 호진
1964년 직지사로 출가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과 대학원에서 불교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 철학과에서 초기불교를 전공, 종교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불교문화대학 불교학과에서 2000년까지 초기불교와 부파불교를 강의했다.
저・역서로 『무아·윤회 문제의 연구』, 『인도불적답사기』, 『성지에서 쓴 편지』(공저), 에띠엔 라모뜨의 『인도불교사 1-2』(번역), 『아쇼까왕 비문』(공역) 등이 있다.
■ 차례
∙ 머리말
1부 제1차 결집
1장 자료 소개
- 율장의 자료
- 경장의 자료
- 논서의 자료
- 역사서·여행기·기타
2장 제1차 결집
- 결집의 의미
- 결집 동기
- 결집 연대
- 결집 장소
- 불전 결집자
- 결집 과정
- 아난다의 죄· 소소계 문제· 뿌라나의 8사
- 결집된 불전 내용
2부 제2차 결집
- 결집 명칭
- 결집 동기
- 결집 연대
- 결집 장소
- 불전 결집자
- 결집 준비와 과정
- 결집 내용
3부 제3차 결집
1장 제1 빠딸리뿌뜨라 결집
- 결집 자료
- 결집 동기
- 결집 연대와 장소
- 결집 참석자
- 결집 과정과 내용
2장 제2 빠딸리뿌뜨라 결집
- 결집 자료
- 결집 연대와 장소
- 결집 관련 인물
- 5사 문제와 승가 분열
- 결집 과정과 결집 내용
∙ 후기
∙ 부언(附言)
■ 책 속에서
붓다는 열반에 들기 직전, 시자로서 25년 동안 그를 모셨던 아난다에게 말했다. “어쩌면 뒷날 너희들은 이와 같이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가르침을 설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이미 우리들의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너희들을 위해 내가 설한 법(法, Dharma)과 제정한 율(律, Vinaya)이 내가 죽은 후 너희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역시 열반에 들기 직전 붓다는 작별 인사를 드리러 간 꾸시나가라 사람들[力士衆]이 붓다의 열반을 만류하자 이렇게 말했다. “설사 내가 세상에 1겁(劫)을 더 머문다 할지라도 결국은 죽어야 할 것이다. 오직 내가 설한 법을 기억해 지니면서 외우고 생각해 잊어버리지 않으면 이것이 바로 내가 세상에 머물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데 결집 사실을 전하고 있는 여러 문헌들에 의하면 다른 동기들이 있었다. 그 내용은 문헌에 따라 다르다.
— 본문 36쪽
대부분의 결집 관계 문헌들에 의하면 결집 장소는 라자그리하지만, 구체적인 장소를 말할 때는 주장이 엇갈린다. 사분율・오분율・십송율・대반열반경・가섭결경 등에서는 “라자그리하에서 결집했다.”라고만 하고 있을 뿐 분명한 장소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머지 여러 문헌에서는 장소의 이름이 다르다. 마하승기율에 의하면 “라자그리하의 찰제산굴(刹帝山窟)로 갔다.” 그리고 “아난다는 결집에 참여하기 위해 찰제굴 문 바깥에 도착했다.” 도왕통사에서는 “장로들이 쾌적한 칠엽굴(七葉窟, Saptaparṇaguhā)에 앉아 법과 율을 결집했다.”라고 하고, 대왕통사에도 동일한 장소를 말하고 있다. “그들은 웨바라(Vebhāra, 毘婆羅) 석산(石山) 중턱에 있는 칠엽굴의 입구에 아소까왕이 지어준 쾌적한 임시 건물에서 결집을 했다.
— 본문 59쪽
아난다는 므리가다와에서 5비구에게 설하신 전법륜경(轉法輪經)을 자세하게 송출했는데 그 내용은 4성제였다. 아난다의 송출이 끝나자 까샤빠는 부처님의 첫 설법에 참석했던 아즈냐따 까운디냐(Ajñata Kaundinya, 阿若憍陳如)에게 아난다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물었다. 까운디냐는, “나 역시 아난다가 말한 것처럼 알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까샤빠는 계속해서 장로 균타(均陀)와 십력가섭(十力迦葉)에게 묻고 차례로 500아라한들에게 물어서 아난다의 송출 내용이 그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러나 표현이 이렇게 되어 있을 뿐 실제로 모든 참석자들에게 한 사람씩 물은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우빨리가 까샤빠에게 물어 확인을 받았다. 결집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 것은 전법륜경뿐이다.
— 본문 108쪽
사분율과 마하승기율은 지금까지 추구한 문헌들의 내용과는 좀 다르다. 사분율에 의하면, 소소계 문제는 아난다를 아라한이 되도록 분발시키는 데 활용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난다는 결집을 시작하기 전에 이미 자신의 노력으로 아라한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략)
여러 가지 주장에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까샤빠는 비구들에게 말했다. “장로들이여, 지금 여러 사람의 말이 각각 다르니 어떤 것이 사소한 계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까샤빠는 아난다가 이전에 지었다는 일곱 가지 죄를 열거하면서 참회할 것을 요구했다. 아난다는 하나하나 해명했다. 그리고 자신은 그 일들에 대해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대덕(大德: 까샤빠)을 믿기 때문에 참회한다.”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 본문 197~199쪽
와이샬리 결집에서는 라자그리하의 제1차 결집과는 달리 결집에 참석한 비구의 수가 왜 700명이어야 했는지, 누가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들을 선출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700결집은 야사(耶舍, Yasa)를 비롯한 서쪽 지방의 비구들과 동쪽 지방의 와이샬리 비구들 사이에 몇 가지 양보하기 어려운 계율 문제 때문에 개최되었으므로 어느 쪽 주장이 옳고 그른지 결정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승가의 모임에서 모든 결정은 만장일치의 원칙을 따랐으므로 700명으로 개최된 이 결집에서 공정한 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동쪽과 서쪽 비구들의 숫자가 각각 350명씩이어야 했을 것이다. 참여 비구들의 동원과 그 선정 문제는 제1차 결집의 경우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관련 문헌의 어디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없다. 관심조차도 나타내지 않았다.
— 본문 281~282쪽
와이샬리 비구들의 경우, 그들이 행하고 있던 열 가지 계율과 관련된 일들이 모두 합법적이라는 것이었다. 돌길라(突吉羅)는 duṣṛa(pāli어, dukkaṭa)의 음역(音譯)으로, 악작(惡作)・소과(小過)・작죄(作罪)라고 번역했다. 가장 가벼운 죄로서 고의로 범했을 경우에는 한 사람의 비구 앞에서 참회하면 되고,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마음속으로 참회하면 된다. 바일제(波逸提)는 pātayantika(pāli어, pācittiya)의 음역으로 바야제(波夜提) 또는 바일저가(波逸底迦)라고도 했고, 한문으로는 타(墮) 또는 단타(單墮)라고 번역했다. 이 계를 범했을 때는 별중(別衆: 4인 이하의 승가) 앞에서 참회해야 한다. 바일제는 율장에 따라 그 수가 조금씩 다른데 약 90가지가 있다. 문헌들에 따라 10사의 명칭과 설명에 약간씩 차이가 있고 각 조목(條目)과 차례도 동일하지 않다.
— 본문 344~345쪽
제3차 결집은 빠딸리뿌뜨라(Pataliputra)에서 개최되었기 때문에 빠딸리뿌뜨라 결집이라고 한다. 이 결집은 이전의 두 결집과는 매우 다르다. 제1결집인 라자그리하 결집과 제2결집인 와이샬리 결집은 동일한 문헌에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이 문헌들은 대부분 정전(正典)에 속한다. 그러나 빠딸리뿌뜨라는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전승이 있다. 즉 남전 문헌과 북전 문헌에 의한 전승이다. 두 전승 간에는 결집 동기, 결집 참석자, 결집 내용 등 모든 것이 다르다.
— 본문 395쪽
『부집이론소』와 『삼론현의』는 경전 결집에 대한 약간의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결집 장소에 대해서는 암시만 하고 있을 뿐 분명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중략)
위의 문헌들은 성전 결집 장소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마하데와의 출가, 5사 선포와 승가의 분열, 마하데와가 생전에 바꾸고 뒤섞어 놓은 경전들을 그의 사후 까쉬미라에서 되돌아간 상좌 비구들이 다시 결집했다는 사실 등, 이 일들이 모두 꾹꾸따상가라마에서 행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역시 마하데와가 죽은 장소도, 그의 장례를 치른 곳도 이곳이었다. 따라서 결집이 실제로 행해졌다면 그 장소는 빠딸리뿌뜨라의 꾹꾸따상가라마(Kukkuṭā-saṃghārāma, 鷄園僧伽藍)였을 것이다. 이곳을 제외하고 다른 장소를 생각할 수는 없다.
— 본문 396쪽
『삼론현의』에 실려 있는 결집 내용은 『부집이론소』의 내용과 다르다. 마하데와는 출가한 뒤 두 가지 일을 했다. 첫 번째 일은 “모든 대승 경전을 취해[取諸大乘經] 그것을 삼장 중에 넣어 해석했다. 아라한들이 법장(法藏)을 결집했을 때 의미[此義, Sens=artha. 내용]를 가려내어 제거했다. 대중부는 그 의미[내용]를 취했고(=adopter) 상좌부는 그것을 취하지 않았다.” 마하데와가 했던 두 번째 일은 5사와 관계된 것이었다. 먼저 주의해야 할 일은, 상좌부 아라한들이 결집을 한 것은 마하데와가 주장한 5사로 인해 경전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5사는 승가의 분열의 원인이 되었을 뿐이었다.
— 본문 486쪽
| 발행일 | 2026. 4.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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