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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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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주 / 조계종출판사

녹원 스님의 신심(信心)과 원력(願力)은 어디서 나왔을까?

스님의 인연들이 전하는 ‘영원한 수행자 영허녹원’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暎虛綠園

 

신심(信心)과 공심(公心), 원력(願力)으로 조계종단과 동국대, 직지사를 일군 녹원 스님을 사람들은 ‘원력의 화신’이라고 말합니다. 평생을 불교와 종단과 대중을 위해 사셨기 때문입니다.

종단 정화불사에 앞장섰고 피폐해진 직지사를 교육의 도량, 수행의 도량으로 일궈냈습니다. 불안정의 연속이던 조계종단의 총무원장으로 추대된 뒤에는 종단 안정화와 함께 다양한 전법, 포교불사를 전개해 대중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 인재불사에 불교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 스님은 동국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대학의 재도약을 이끌었습니다. ‘약국 하나도 만들기 어렵다던 불교 수준’을 종합병원을 건립하고 그 이상의 능력을 가진 종교로 확인시켜 주기도 했습니다.

녹원 스님은 오직 수행과 전법에 진력하면서 많은 인연들을 만났습니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국내외 대중을 제접했습니다. 27명의 인연들이 증언하는 수행자 영허녹원 대종사의 이야기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누구도 만들어내지 못한 ‘대하드라마’ 속으로 지금 들어가셔도 좋을 것입니다.

[ 출판사 서평 ]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暎虛綠園

 

  1.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평생 수행(修行)과 전법(傳法)에 진력했던 녹원 스님을 추모하는 책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暎虛綠園(조계종출판사 )이 발간됐습니다.

이번 책은 녹원 스님의 평생 도반 도원 스님(전 조계종 원로의장)을 비롯한 대중들과 혜창 스님(문경 김룡사 회주)을 포함한 제자들의 ‘수행자 녹원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1. 녹원스님문도회는 녹원 스님의 생애와 가르침을 좀 더 많은 대중들에게 전하기 위해 책을 펴냈습니다. 책을 기획한 녹원 스님의 손상좌 묘장 스님(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은 발간 취지를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 직지사 주지 등 공적인 소임을 보실 때와 상좌와 불자들을 대하실 때의 기억은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스님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추억을 서로 나누고 공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처음 기획하게 되었다.

이 책을 기획하면서 문중의 손상좌 되는 사형사제들에게 연락해 발간 취지를 설명하자 다들 흔쾌히 동의하며 마음을 모아 주었다. 손상좌들의 뜻을 모아 만들어낸 이 책을 통해 수행자이자 교육자였고 불자들에게는 더없이 자비로운 스승이었던 노스님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1. 묘장 스님은 책 제목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暎虛綠園』에 대해 “노스님께서 『원각경』에 있는 ‘가없는 허공이 깨달음에서 나타난 것이다[無邊虛空 覺所顯發]’는 말씀을 좋아하셨다.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모두 깨달음에서 나타난 것이라면 우리의 삶이 그대로 부처의 삶’이라고 강조하셔서 제목을 이와 같이 지었다.”고 전했습니다.

 

  1. 이번 책에는 녹원 스님의 정화불사 참여, 김천 직지사 중창불사,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종단 행정 참여,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동국대 이사장 취임, 동국대 일산병원 건립불사 등에 함께 했던 출재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도반과 후학, 제자들과의 인간적인 에피소드도 많이 있어 잘 알려지지 않은 녹원 스님의 면목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법정 스님이 직접 작성한 녹원 스님에 대한 글도 눈에 들어옵니다.

 

  1. 녹원 스님을 모시고 함께 정진했던 조계종 종정 중봉성파 대종사께서는 먼저 법어를 통해 녹원 스님의 가르침이 널리 전해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대종사(大宗師)의 가풍(家風)은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고 나아가고 들어감에 집착(執着)이 없었습니다. 세상(世上)으로 나오면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춘 만행보살(萬行菩薩)이요, 산으로 들어오면 돈오적(頓悟的) 안목(眼目)을 갖춘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大宗師)의 일언일구(一言一句)에 중생(衆生)을 깨우치는 원음(圓音)이 이루어지고 사물마다 감흥이 생겨나서 걸음마다 자운(慈雲)이 있었습니다.

영허당(暎虛堂) 녹원 대종사(綠園大宗師)와 반연(絆緣)이 깊은 출·재가자들의 회고담(懷古談)이 출간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이 회고담(懷古談)의 출간을 계기로 물길에 맞춰 노를 저으셨고, 물때에 맞춰 닻을 내리셨던 대종사(大宗師)의 선교방편(善巧方便)이 후대(後代)에 전해지길 바랍니다.”

 

  1. 녹원 스님의 평생 도반이자 녹원 스님의 행장을 직접 정리한 도원 스님은 게송으로 담담하게 당신의 심경을 피력한 바 있습니다.

 

찬란했던 그림자 거두니 한 물건도 없어라 燦影息了無一物

허공을 비추듯 밝고 맑아 티끌 한 점 없네 瑩若暎虛絕點瑕

이에 함께 걸었던 70년 세월이 생각나 因憶同行七十年

지팡이 짚고 푸른 동산에서 떨어진 꽃을 밟아본다 携笻綠園踏殘花

 

  1. 녹원 스님의 가르침을 이으며 직지사 대중들의 화합과 수행을 이끌고 있는 구미 해운사 주지 법성 스님과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스님은 스승에게 받은 가르침에 대해 설명합니다.

 

“큰스님께서 당신을 위해 무엇을 쓰는 일은 없었습니다. 들어오는 것들은 다 대중들과 나누셨어요. 큰스님은 당신의 수행과 기도에도 철저하셨어요. 큰스님 절을 하시는 것만 봐도 신심이 납니다. 아주 정확하게 정성껏 절을 하셨어요. 염불도 잘하셨습니다. 음성이 청아하고 너무 좋았어요. 큰스님께서는 60대까지 새벽 행선축원을 직접 하셨습니다. 사시예불도 9시 30분에 들어가셔서 꼭 11시 30분까지 두 시간을 꽉 채워서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기도와 정진은 부처님과의 약속’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빼놓지 않고 하셨습니다.”

  • 법성 스님

 

“저는 큰스님께 받은 세 가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있습니다. 첫째 가르침은 명분이 없는 행동은 일체 하지 말라는 것이고, 둘째 가르침은 삼보정재를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것이고, 셋째 가르침은 공금과 개인 돈을 혼용해 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결국 애종심(愛宗心) 혹은 애사심(愛寺心)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의 애종심, 애사심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항상 불교와 종단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포교와 교육을 그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또 사중 물건 하나하나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사람들이 ‘녹원 스님은 티끌 하나도 직지사로 가져와 버린다’고 할 정도로 직지사가 당신의 전부였습니다.”

- 법등 스님

 

  1. 가장 오랫동안 녹원 스님을 시봉한 직지사 주지 장명 스님의 이야기는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어떻게 하면 큰스님이 편안하실까? 기쁘실까? 이런 생각뿐이었습니다. 큰스님께서 공양을 잘하시면 저도 기분이 좋고, 잘 못 하시면 저도 기분이 안 좋고 그랬어요. 제가 기분이 좋으면 큰스님께서도 좋으신 거였고, 제가 기분이 안 좋으면 큰스님께서도 뭔가 불편하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의 정신세계가 큰스님의 모든 것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큰스님의 10분의 1, 100분의 1만 따라가도 저는 성공한 삶이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 큰스님 같은 분은 결코 없었습니다. 고금(古今)을 막론하고 보아도 흔한 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큰스님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참고하면, 큰스님의 열정과 원력(願力), 신심(信心)으로 산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큰스님을 만나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입니다.”

 

  1. 녹원 스님을 모시고 동국대 중흥을 이끌었던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님의 증언도 생생합니다.

“녹원 큰스님은 불교 종립대학을 너무나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동국대에 뭐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셨어요. 책임감과 의무감이 대단하셨어요.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직지사에서 올라오셨습니다. 집무실에서 항상 저와 대소사를 협의하시고 또 결재도 하셨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어떤 사적 부탁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학교 운영은 철저하게 저한테 맡기셨고 뒤에서 후원자로서 역할에 충실해 주셨습니다. 언제나 저를 도와주신다는 입장이셨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저도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녹원 큰스님께서 좀 더 이사장을 하셨으면 동국대는 몇 단계 더 상승한 최고의 대학이 됐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1. 유발상좌로 오랫동안 녹원 스님을 모신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위공무사몽역한(爲公無私夢亦閑)’이라고 하잖아요. 공을 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꿈조차 한가롭다는 말입니다. 저는 이 글귀를 볼 때마다 녹원 큰스님을 생각합니다. 마치 큰스님께서 하신 말씀처럼 느껴집니다. 선공후사(先公後私)도 녹원 큰스님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큰스님 당신에게 ‘개인’은 없었습니다. 항상 불교와 대한민국만 있었어요.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나눴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 역시 공(公)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직에 있는 저는 지금도 큰스님의 이 당부를 생각합니다.”

[ 차례 ]

 

영허당 녹원 대종사 행장 _ 도원 스님

추천 법어 _ 중봉성파 종정예하

발간 축사 _ 정휴 스님

사진으로 만나는 영허녹원 대종사

 

녹원 스님과 함께 한 수행자들

“배도원의 선지식(善知識)은 오녹원이야!” _ 前 조계종 원로의장 도원 스님

“녹원 스님이야말로 진정한 리더” _ 前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명선 스님

“반듯하고 반듯했던 수행자” _ 前 조계종 원로의장 밀운 스님

“불교정신에 가장 충실했던 수행자” _ 前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

“녹원 스님은 현대판 도사(道士)” _ 조계종 명예원로의원 암도 스님

“수행자의 이정표를 보여주신 어른” _ 조계종 원로의원 일면 스님

“사표(師表)가 되어 주신 어른 중의 어른” _ 조계종 법계위원장 법산 스님

“한국불교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지도자” _ 서울 삼천사 회주 성운 스님

“수행자로서 법(法)답게 사신 어른” _ 前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원산 스님

“흐트러짐이 없었던 진짜 수행자” _ 前 해인총림 해인사 주지 향적 스님

“가을 날씨처럼 맑고 깨끗하신 어른스님” _ 서울 구룡사 회주 정우 스님

“원력(願力)에 맞는 실천력을 겸비했던 어른” _ 조계종 호계원장 보광 스님

“녹원 큰스님은 진정한 사명 대사의 후예” _ 관음종 종정 홍파 스님

“최고의 수행자, 녹원 스님” _ 서울 보성사 회주 자민 스님

“동국대 중흥의 위대한 선각자” _ 송석구 前 동국대 총장

 

녹원 스님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들

“큰스님은 노력하는 천재” _ 문경 김룡사 회주 혜창 스님

“모든 것을 갖추셨던 수행자” _ 구미 해운사 주지 법성 스님

“모두의 스승이었고 부모님이었던 어른” _ 조계종 원로의원 법등 스님

“대중을 위해 헌신하신 어른” _ 직지사 중암 회주 도진 스님

“큰스님은 저의 전부입니다” _ 서울 학도암 회주 법보 스님

“아버지 같았던 스승님” _ 직지사 천불선원장 의성 스님

“큰스님은 저의 존재 이유” _ 직지사 주지 장명 스님

“조계종 제일의 선지식(善知識)” _ 청암사 율학승가대학원장 지형 스님

“오직 불법(佛法)을 위해 사신 어른” _ 前 진각종 통리원장 혜정 정사

“대원경지(大圓鏡智)의 통찰력을 가진 큰스님” _ 김종빈·황인선 부부

“언제나 공(公)을 위했고 사(私)가 없었던 어른” _ 주호영 국회 정각회 회장

“자기절제와 수행의 결정체였던 선지식(善知識)” _ 이형열 前 동국대 일산병원 행정처장

 

영허녹원 대종사 추모글

편집 후기 _ 묘장 스님

 

[ 종정예하 추천법어 ]

 

대해大海를 뒤집고

수미산須彌山을 거꾸러뜨리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출격장부出格丈夫

영허녹원 대종사

 

영허당(暎虛堂) 녹원 대종사(綠園大宗師)는 이사(理事)를 겸비하여 일체 원융(圓融)함을 이룩한 눈 밝은 종장(宗匠)이고 만덕의 법기(法機)를 갖춘 원력보살(願力菩薩)입니다.

 

일찍이 일대시교(一代時敎)를 마치고 제방선원(諸方禪院)에서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해결하기 위해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심자증(內心自證)하여 불조(佛祖)의 현지(玄旨)를 깨닫고, 그 깨달음을 사회(社會)에 회향(廻向)하기 위해 평생 정진한 행원(行願)을 갖춘 보살(菩薩)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大宗師)께서 머무는 곳마다 원력(願力)이 구현(具顯)되어 법계(法界)를 빛나게 하고 도업(道業)을 충만(充滿)케 하였습니다. 대종사(大宗師)의 가풍(家風)은 이사(理事)에 걸림이 없고 나아가고 들어감에 집착(執着)이 없었습니다.

 

세상(世上)으로 나오면 팔만세행(八萬細行)을 갖춘 만행보살(萬行菩薩)이요, 산으로 들어오면 돈오적(頓悟的) 안목(眼目)을 갖춘 눈 밝은 선지식(善知識)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종사(大宗師)의 일언일구(一言一句)에 중생(衆生)을 깨우치는 원음(圓音)이 이루어지고 사물마다 감흥이 생겨나서 걸음마다 자운(慈雲)이 있었습니다.

 

대종사(大宗師)께서는 1958년 교구본사로 승격된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취임한 이래 일곱 차례에 걸쳐 연임하셨습니다. 대종사께서 평생 동안 주석(駐錫)하시며 원력(願力)과 헌신(獻身)으로 중창불사하신 도량(道場)답게 직지사는 대종사(大宗師)의 가풍(家風)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습니다.

 

직지사의 전각(殿閣)과 당우(堂宇)는 물론이고 경내의 초목(草木)과 돌멩이 하나까지도 대종사(大宗師)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습니다. 대종사(大宗師)의 숨결로 인해 황악(黃岳)의 불일(佛日)은 더욱 높아졌고, 법등(法燈)의 불빛은 더욱 찬란하게 밝아졌던 것입니다.

 

대종사(大宗師)께서는 1962년 불교(佛敎) 재건비상회의(再建非常宗會)의 비구의원(比丘議員)으로 활동하시면서 불교정화(佛敎靜和)에 진력(盡力)함으로써 통합종단(統合宗團)의 출범(出帆)에 이바지하셨습니다.

 

1981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맡아 종단중흥의 기틀을 다지는 새로운 제도(制度)를 만들었으며, 1984년 조계종(曹溪宗) 총무원장(總務院長)에 취임한 뒤에는 통합(統合)의 지도력(指導力)으로 종단의 시급한 난제(難題)들을 해결(解決)하셨습니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대종사(大宗師)께서는 경주, 포항, 분당, 일산에 동국대병원을 개원함으로써 불자들이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업적(業績)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일대 혁신(革新)의 업적(業績)들은 대종사(大宗師)께서 이사(理事)에 두루 자재(自在)한 안목(眼目)을 지니셨고, 대해(大海)를 뒤집고 수미산(須彌山)을 거꾸러뜨리는 대기대용(大機大用)의 출격장부(出格丈夫)이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영허당(暎虛堂) 녹원 대종사(綠園大宗師)와 반연(絆緣)이 깊은 출·재가자들의 회고담(懷古談)이 출간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이 회고담(懷古談)의 출간을 계기로 물길에 맞춰 노를 저으셨고, 물때에 맞춰 닻을 내리셨던 대종사(大宗師)의 선교방편(善巧方便)이 후대(後代)에 전해지길 바랍니다.

 

또한, 이 회고담(懷古談)을 읽고서 눈 밝은 후학들이 대종사(大宗師)께서 펼쳐 보이신 어초문월(語超文越)의 예봉(銳鋒)을 거울삼아 건곤(乾坤)을 일축(一蹴)으로 무너뜨리는 기량을 보여 모든 중생(衆生)에게 법익(法益)이 되고 귀감(龜鑑)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불기2567(2023)9

大韓佛敎曹溪宗 宗正 中峰性坡

 

 

 

 

 

 

 

 

 

 

 

 

 

 

 

 

 

 

 

 

 

 

 

 

[ 지은이 ] 유철주 작가는

<현대불교>와 월간 <불광> 등의 언론에서 부처님 법을 공부하고 전해왔으며 『산승불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터뷰집을 내 왔다. 영허녹원 대종사 추모집이 10번째 책이다. 현재 ㈜도반HC 기획콘텐츠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 책 속으로 ]

도원 스님은 “한암 스님을 만나고 ‘이런 도인이 없다’ 생각했는데, 녹원 스님 옆에 있어 보니 또 ‘이만한 스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스님 모두 수행자의 본분을 철저히 지킨 분들이다.”고 강조했다.

“배도원의 선지식(善知識)은 오녹원입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녹원 스님을 닮으라고 제 상좌들한테도 얘기를 해요. 인사 오는 모든 스님들한테도 말합니다. 더 말하는 것은 사족입니다. 하하.”

  • 도원 스님, 73p

 

“녹원 스님은 아주 반듯했던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반듯하면 됩니다. 그거 하나면 돼요.

반듯하다는 것은 계戒를 지키고 바르게 산다는 의미입니다.

또 종무행정을 매우 잘 알았어요. 일을 할 줄 아는 분이죠. 녹원 스님이 총무원장을 한 뒤 소임자들도 임기를 지키게 됐습니다. 부처님은 물처럼 살았습니다. 물은 모든 생명의 근본이 되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순리대로 흘러갈 뿐입니다. 물은 무슨 욕심이 없습니다.

녹원 스님도 물 흐르듯 소임을 보고 또 일을 했던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밀운 스님, 88p

 

“녹원 스님은 현대판 도사道士입니다. 과거식 도사가 아니라 현대식 도사말입니다. 과거의 도사는 수행으로 일가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행정을 잘 몰랐어요. 현실을 몰랐습니다. 녹원 스님은 수행은 물론이고 행정에도 통달한 분입니다. 이 세상은 행정을 기본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이사理事를 겸비해야 합니다. 녹원 스님처럼 행정을 그렇게 잘하신 분이 없었어요.

아니 지금까지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오랫동안 녹원 스님의 능력을 따라가 보려 했는데 잘 안되고 말았습니다. 하하.”

  • 암도 스님, 116p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후배스님들이 찾아와 불사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봅니다. 제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어요. 녹원 큰스님이 계실 때 저의 답은 항상 같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불사를 하려거든 직지사를 둘러보라고요. 실제로 상담하러 온 스님들이 직지사를 많이 찾아 갔습니다.

단순히 전각의 겉모습만 살피지 말고 절에서 느껴지는 품격과 분위기 등을 함께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직지사에 발만 들여도 녹원 큰스님의 법향法香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직지사에서 수행자의 이정표를 보여주신 어른의 가르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 일면 스님, 130p

 

“깔끔하신 어른이죠. 군더더기가 없는 분이었습니다. ‘얼렁뚱땅’ 같은 말은 녹원 스님에게서 상상할 수 없었어요. 모든 것이 아주 정확했습니다. 체계적이고 예리했습니다.

특히 일을 꿰뚫어 보는 판단력이 정확했어요. 본사주지, 중앙종회의장, 총무원장 등을 하시면서 녹원 스님의 이런 장점은 더 극대화되었다고 봅니다. 정화불사때에도 어른스님들이 녹원 스님의 총명함을 많이 예뻐했다고 들었습니다. 녹원 스님은 정말 이사理事를 겸비한 종장宗匠 중의 종장이셨습니다.”

  • 법산 스님, 144p

 

“일을 하시는 분들은 큰 그림도 잘 그리지만 작은 일도 세밀하게 잘 처리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녹원 큰스님은 그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분이었습니다. 원력(願力)에 맞는 실천력을 갖춘 보기 드문 어른이었습니다. 어떤 행사를 하면 좌석배치 하나까지 체크 하시는 분이 바로 녹원 큰스님입니다. 큰 행사에서 의전만큼 중요한 것이 없잖아요. 큰스님께서는 그것을 너무 잘 아셨습니다. 행사 시작 직전까지 확인하셨고 최종 오케이를 주셔야 행사가 시작될 수 있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큰스님은 항상 공사가 분명했고 맺고 끊는 게 분명했습니다. 지시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소임자들이 일을 하기 쉬웠습니다.”

  • 보광 스님, 226p

 

“큰스님의 신심은 말로 다 표현 못하죠. 제가 모시고 살아서 잘 압니다. 절에 계실 때 새벽, 저녁 예불을 빠진 적이 없으시고 항상 염주를 들고 ‘관세음보살’ 주력(呪力)을 하셨습니다. 주무시는 시간 외에는 눕지를 젊은 시절의 녹원 스님 않으셨어요. 항상 책을 보셨습니다. 보시는 책도 경전부터 소설, 시, 시사 잡지 등 다양했어요. 생활이 너무 철저하셨어요. 수행자로서 나무랄

데 없는 분이 바로 우리 큰스님이십니다.”

  • 법보 스님, 340~341p

 

“녹원 큰스님은 제가 만난 스님 중 가장 훌륭하시고 의지가 깊으신 분이었습니다. ‘조계종에 저런 스님이 계셨구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습니다. 제가 학생일 때 법문을 듣는데, 큰스님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당신의 뜻을 명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심장이 떨릴 정도의 환희심을 느꼈어요. 그렇게 법문을 잘하시는 분은 처음인 것 같아요. 큰스님은 법문뿐만 아니라 실제 실행實行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종단, 직지사, 동국대, 청암사에서 큰스님은 직접 보여주고 또 보여주셨습니다.”

  • 지형 스님, 370p

 

“큰스님께서는 제산 스님과 탄옹 스님의 법(法)을 이으셨습니다. 항상 불법(佛法)의 미래를 생각하는 분이십니다. 사명 대사가 국가를 위한 불사를 하였듯이 큰스님 역시 불교와 국가를 위한 불사를 하신 분입니다. 종무에 진력하셨지만, 생활선 수행을 하시면서 춘원 이광수의 소설을 좋아하셨고 임어당 전집을 곁에 두실 정도 문학적인 면모도 강했습니다. 두루 회통하신 분이 바로 녹원 큰스님이시죠.

녹원 큰스님의 가르침을 항상 생각합니다. 다. 자신을 낮추는 수행을 바탕으로, 오로지 부처님의 본래 서원을 성취하고자 마음을 한순간도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의 주인공이지만 모든 불사를 행할 때는 주인공인 자신을 위하는 것이 아닌,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이 참다운 주인공이 되는 길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 혜정 정사, 397p

 

“유부위여有孚威如라고 하지요. 표정은 근엄하면서 가슴에는 따뜻한 정을 간직한 사람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큰스님이 딱 그런 어른이셨습니다. 정말 인간적으로 따뜻하셨어요.

인사를 드리면 언제나 밝고 편안한 모습으로 맞아주셨습니다. 또 내공이 대단한 수행자이자 탁월한 행정가로 기억합니다. 큰스님께서 조계종 총무원장과 동국대 이사장을 훌륭하게 회향하신 것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행이 없었다면 그 큰일들을 하시지 못했을 것입니다.”

  • 김종빈 전 검찰총장, 3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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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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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녹원

Q1 주문결제 후 주문 취소시 환불은 어떻게 하나요?

신용카드 환불
고객님의 신용카드로 결제 후, 부분적인 주문취소 시에는 취소금액을 제외한 금액만큼 신용카드 재승인을 하셔야 주문이 정상 처리됩니다.

은행입금(무통장) 환불
고객님이 은행으로 입금하신 후, 환불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1:1 문의를 이용해서 환급받을 계좌를 입력한 후 고객센터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환급은 근무일 기준 다음날 오후에 환급 됩니다.


Q2 반품완료 후 어떻게 환불 받을 수 있나요?

반품 완료 시점은 반품 요청하신 상품을 택배 기사를 통해 맞교환 하거나 직접 반송처리하셔서 물류센터로 도착되어 확인하는 시점을 의미합니다.
고객님께서 반품한 상품을 확인한 즉시 반품예정이 확인되어 완료 처리가 됩니다.

이때 고객님께 반품완료 메일로 안내해 드리며, 이는 '마이페이지>주문내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 신용카드
전체 반품의 환불일 경우 반품 확정된 다음날로부터 일주일 이내 해당 카드사로 취소확인이 가능합니다.
부분 반품의 환불일 경우
취소금액을 제외한 금액만큼 신용카드 재승인을 하셔야 주문이 정상 처리 됩니다.

2. 계좌이체, 무통장입금
전체 반품, 반품 상품의 환불 모두 반품 완료 되어진 날 환불 처리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통장 환불처리는 환불 요청 후 업무기준일
다음 날 오후 6시 이후로 해당 계좌로 입금됩니다.


Q3 적립금 환불은 어떻게 하나요?

반품완료시점에서 적립금으로 바로 환불 처리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