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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선사의 다도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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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911558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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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춘/조계종출판사

[ 책 소개 ]

 

초의선사의 다맥(茶脈)을 이은

한국 유일의 초의차계승자 박동춘 박사!

그가 세상에 내놓은 초의 사상의 최신 연구

 

조선 후기, 자칫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던 우리 차 문화를 되살린 초의선사. 하지만 초의가 되살려놓은 다법(茶法)은 조선의 국운 쇠락과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이라는 국가 재난의 연속으로 크게 꽃피우지 못했다. 다행히도 그 맥은 끊기지 않고 초의의 제자들에게 전해져 실낱처럼 명맥을 유지해왔다. 근대에 이르러 초의의 다풍(茶風)은 응송 스님에게 이어졌고, 응송 스님은 1985년, 이 책의 저자인 박동춘 박사에게 『다도전수게(茶道傳受偈)』를 내려 초의의 다도 계승자임을 인정했다.

저자는 이 인연으로 초의 연구에 매진했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한학을 깊게 공부한 덕에 초의와 그와 교류했던 경화사족(京華士族)이 남긴 한문 문헌을 읽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를 주제로 동국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자타가 공인하는 초의학(草衣學) 최고의 권위자가 되었다. 초의의 다도법 연구에 천착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 저자는 초의와 초의차의 대한 방대한 연구 성과를 이 책에 담아 세상에 내놓았다. 기존 연구 성과는 물론 최근 발견된 초의선사의 새로운 자료를 모두 모은 이 연구서는 ‘초의 사상’의 의문을 풀어낸 연구 성과물이다.

 

 

[ 출판사 서평 ]

 

기존 연구 성과와 최근 발견된

초의선사의 최신 자료를 모두 담은

한국 최고의 초의 사상연구서

 

우리나라에 차가 소개된 시기는 대략 6세기 말에서 7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특히 당(唐)을 왕래한 승려들이 적극적으로 차를 유입했다. 10세기 말경에 이르면 외래문화인 차 문화가 고려인의 기호와 풍토를 함의한 우리 차 문화로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왕실 귀족과 승려들이 차를 향유하며 다사(茶事)를 주도하였다. 문예적 안목이 높았던 고려의 음다층은 세련되고 예술적인 고려만의 차 문화를 완성했다. 그러나 조선 시대에 이르러 차 문화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의 지배층은 차가 불교문화를 상징한다는 인식으로 멀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차는 극소수의 수행승들 사이에서나 그 명맥을 잇게 되었다.

이것이 조선 후기 초의선사의 등장으로 일변하기 시작했다. 초의는 차의 이론을 정립하고 선대의 제다법을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하였다. 당시 중국차만을 알고 있던 지식인들에게 우리 차의 우수성을 인식시켰다. 초의는 자신이 만든 초의차를 통해 조선 후기 유학자들과 교유하며 차에 대한 관심과 애호를 끌어내어 조선 후기 차 문화 중흥을 도모했다.

이 책은 이러한 초의의 생애, 수행, 저술을 심도 깊이 연구하고, 조선 후기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배경을 상세히 파헤쳤다. 또한 초의가 정립한 제다법, 탕법, 장다법을 통해 그만의 다도 사상을 살폈다.

초의가 당시 한양과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경화사족(京華士族)들과 교유하며 음다 기층을 확보해 간 과정을 보여주고, 끽다거(喫茶去)의 선다전통을 이은 초의차가 누구에게로 계승되었는지 규명하여 초의차 계보를 알게 한다.

『동다송』, 『다신전』, 『일지암시고』 등과 초의에게 보낸 유학자들의 간찰,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을 기본자료로 활용하고 저자가 발굴해낸 초의선사의 유품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을 통해, 초의의 구체적인 다도 사상을 밝혔다. 이와 함께 근래에 발견한 초의와 추사 김정희의 새로운 자료를 비롯하여,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의 새로운 자료도 이 책에 담았다. 초의 관련 최신 연구 자료를 담아 집대성한 최초의 연구서이다.

 

 

전다박사(煎茶博士)이자 한국의 다성(茶聖)’ 초의,

차를 통해 선(() 융합의 선사상을 정립하다

 

초의는 조선 후기 사라질 위기에 있던 사원차를 복원하여 초의차를 완성하였다. 또한 실학에 눈뜬 경화사족들의 차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여 애호층을 확산했다. 초의와 경화사족의 교류는 초의가 차 문화를 중흥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다. 당시 초의와 교유했던 경화사족들은 그를 전다박사(煎茶博士)라 칭하였는데, 이는 초의를 차 전문가라고 인정한 것이다.

초의가 차 문화 중흥에 미친 영향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는 초의의 저술인 『동다송』과 『일지암시고』, 초의가 남긴 서책의 목록을 기록한 『일지암서책목록』, 박영보의 「남다병서」, 신위의 「남다시병서」가 있다. 그리고 유학자들이 초의에게 보낸 간찰, 범해의 문집인 『범해선사유고』,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의 문집 등이 있다.

초의는 선·교 융합의 수행체계를 토대로 그의 선사상을 정립하였다. 이는 휴정 이후 대둔사에 전해진 수행 체계를 계승한 연담, 완호 등에게 영향받은 것이다. 아울러 그의 사상에 스며든 유학사상은 정약용, 김정희 등 성리학에 밝았던 인물과의 교유를 통해 영향을 받았다.

특히 초의는 정약용에게 시학과 학문 방법, 유가 사상 및 역사관 등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행승이었던 초의가 유학, 시학, 문예 예술에 깊이 천착했다는 점은 그의 장서 목록인 『일지암서책목록』에 상당량의 유가서(儒家書), 당송 대의 시문 등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초의 다도는 선림(禪林)의 끽다거(喫茶去) 전통을 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당나라에서도 차와 선종이 융합하여 제다법과 탕법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이를 토대로 발전된 차 문화를 구축할 수 있었다. 초의 역시 조주선사의 ‘끽다거’ 전통을 이은 선종 수행승들이 지향했던 선림의 차 문화 전통을 이었다. 이를 기반으로 차 이론을 정립하고 제다법을 완성하여, 조선 후기 쇠퇴하던 차 문화와 대둔사의 끽다 전통을 되살리는 토대를 마련했다.

초의의 『동다송』은 차의 역사는 물론 좋은 차의 기준, 잎차의 제다의 원리와 그 가치를 확연히 드러낸 저술이다. 그의 다도는 제다를 통해 차의 오묘한 실체를 탐구, 관찰하여 실증적 이론을 완성하여 초의차를 만들었는데, 이는 차의 원리를 체화한 결과물이라 하겠다.

조선 후기 차 문화 중흥은 초의가 사대부들과 활발히 교유했던 1830에서 1866년까지 지속되었으나, 초의가 입적한 후로부터 후대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근대로 이어지는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차의 애호층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의 다도는 대둔사 다풍으로 정착되어, 그의 제자들에게 이어졌다. 범해는 초의 다도를 이은 다승(茶僧)으로 여러 편의 다시를 남겼고, 이어 송광사에서 수행했던 그의 제자 금명에게 이어졌다. 그러나 금명의 뒤를 이은 제자는 근현대 불교계의 격동기를 거치면서 제대로 맥을 이어가지 못했다. 반면에 범해의 제자인 대둔사 원응으로 이어진 초의 다풍은 응송으로 이어져 박동춘에게 전승되었다. 차례

 

| 저자의 글 |

초의차, 그 오묘함의 근원을 찾아서

 

. 들어가며

 

. 초의선사의 생애

 

  1. 삶의 자취

1) 출가

2) 사승 관계

3) 서상수계

  1. 저술

1) 선리(禪理)

2) 시문(詩文)

3) 다서(茶書)

4) 기타

  1. 초의선사의 유품 목록

1) 「서책목록(書冊目錄)」

2) 「첩책목록(帖冊目錄)」

3) 「주련목록(柱聯目錄)」

4) 「명한시초(明翰詩抄)」

5) 「산업물종기(産業物種記)」

6) 「선사답기(先師畓記)」

  1. 경화사족과 교유 확대

 

. 조선 시대 차 문화의 흐름

 

  1. 조선 전기
  2. 양난 이후
  3. 조선 후기

 

. 초의선사의 차 문화 중흥 요인

 

  1. 초의차 제다법의 완성
  2. 탕법의 확립
  3. 장다법 연구

 

. 초의차를 애호한 경화사족 및 중인들

 

  1. 경화사족

1) 추사 김정희

2) 산천도인 김명희

3) 유산 정학연

4) 금령 박영보의 「남다병서」

5) 자하 신위의 「남다시병서」

  1. 초의차를 애호한 중인

1) 소치 허련

2) 치원 황상

3) 호산 조희룡

 

. 초의선사의 다도 사상

 

  1. 다삼매(茶三昧)
  2. 전다삼매(煎茶三昧)

 

. 초의선사의 다도 계승

 

  1. 범해의 초의 다도 계승

1) 범해의 다도 체계

2) 범해의 「초의차」

3) 범해의 「다약설」

4) 범해의 「다구명」

5) 「다가」와 대둔사 다도

6) 범해의 「적다」와 「제다」

  1. 금명의 법계와 다도

1) 금명의 법계

2) 금명의 다도

  1. 응송 박영희의 초의 다풍 계승

1) 응송의 발자취

2) 사승 관계

3) 응송의 다도 및 전승

 

. 나오며

 

참고문헌

<부록 1> 초의 연보

<부록 2> 박영보 「남다병서」 원문 및 번역문

<부록 3> 신위 「남다시병서」 원 문 및 번역문

찾아보기

 

[ 지은이 ] 박동춘(朴東春)

 

저자 박동춘은 초의선사의 다맥(茶脈)을 이은 응송 박영희 스님에게 <다도전게(茶道傳偈)〉를 받은 유일한 인물이다. 이는 저자가 조선 후기 초의선사에 의해 정립된 ‘초의차’의 이론과 제다법을 이어받았다는 증거이다. 저자는 우리 전통 차의 적통인 ‘초의차’를 잇는 한편 한국 차 문화와 관련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일에도 힘썼다. 이처럼 초의선사의 다도 연구를 주제로 연구에 매진한 결과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응송 박영희 스님으로부터 무공(無空)이라는 법호를 받았으며, 전 성균관대 겸임교수를 지냈고,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겸임교수이자 사단 법인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이사장 겸 소장을 맡고 있다. 또한 ‘초의차’를 계승하는 ‘동춘차’를 만들어 한국 다도의 맥을 보존·전수하고 있다.한국 차 문화 부흥을 위해 노력한 저자의 공로는 제2회 화봉학술문화상(2011), 제22회 행원학술 특별상(2013), 제20회 다촌차문화 학술상(2021) 등의 수상으로 빛을 발했다.

저서로는 『초의선사의 차문화 연구』, 『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 『우리시대 동다송』, 『추사와 초의』, 『박동춘의 한국차 문화사』, 『조선의 선비, 불교를 만나다』, 『초의스님 전상서』, 『초의 의순의 동다송·다신전 연구』, 『고려시대 차문화 연구』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

 

우리나라에 차가 소개된 시기는 대략 6세기 말에서 7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대개 당(唐)을 왕래한 도당(渡唐) 구법승이나 관비사비 유학생, 사신, 상인 등을 통해서였고, 특히 구법승은 적극적으로 차를 유입한 계층이라 할 수 있다. 구법승들은 선종 수행과 융합된 음다풍(風)을 신라에 소개하였는데, 10세기 말경에 이르면 외래문화인 차 문화가 고려인의 기호와 풍토를 함의한 우리 차 문화로 발전하였다. 고려 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차 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인데, 왕실 귀족과 승려들이 차를 향유하며 다사(茶事)를 주도하였다. 문예적 안목이 높았던 고려의 음다층은 세련되고 예술적인 차 문화로 발전시켰고, 이와 더불어 고려의 색채를 띤 차와 다구(茶具)가 생산되면서 송(宋)에 비견할 만한 고려의 차 문화가 완성되었다. (14~15쪽)

 

차는 선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차는 선 수행의 장애 요소인 잠이나 적체된 몸의 피로감을 해소시키는 정신음료이다. 그러므로 차와 선이 긍극적으로 도달할 목표점은 근원적으로 다른 개념이라 하겠다. 물론 차를 만들거나 차를 다릴 때 삼매의 집중성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조다삼매(造茶三昧)와 전다삼매(煎茶三昧)는 삼매의 경지에서 차를 만들어 차를 다려야 한다는 점에서는 원리에 맞는 것이지만, 엄격하게 구분한다면 다선일미란 일치될 수 없는 철학 개념인 셈이다 (20쪽)

 

초의는 조사선을 근간으로 하고 청허가 주창한 선교일치의 수행 입장을 견지하는 선리를 내세우며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하였다. 초의의 선리를 드러낸 『선문사변만어』는 치밀한 고증을 통해 이종선(二種禪)의 이론적 바탕을 구축하였는데, 이러한 고증 태도는 정약용과 김정희에게 영향을 받은 고증학의 학문적 방법론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초의는 백파가 『선문수경』에서 주장한 삼종선(三種禪)을 반박하고, 이종선을 주장하는 『선문사변만어』를 저술하여 이종선과 삼종선 논쟁을 촉발시켰다. 이는 조선 후기에 벌어진 전통적인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대립이라는 점에서 근현대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44쪽)

 

이 편지는 변지화가 진도 목사로 임명되어 화원리(花源里: 진도)에 있을 때 초의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의 발굴로 초의가 「동다송」을 저술한 후 변지화를 통해 홍현주에게 전하게 되는 과정이 밝혀졌다. 변지화가 다른 사람을 시켜 등초하는 과정에서 오류를 발견하고는 질 의처를 표시하여 초의에게 보냈고, 초의가 내용을 정정·보완하고 표제까지 바꾸었다는 사실도 함께 드러났다. 따라서 변지화의 편지는 이 다시(茶詩)가 저술된 배경을 밝혔을 뿐 아니라, 「동다행」이 『동다송』으로 제명이 바뀌게 된 경위까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헌 자료이다. (60쪽)

 

그리고 「탕변」에는 초의의 치밀한 연구 태도가 나타나 있다. “곧바로 소리가 없어지는 것이 순숙이다(直至無聲 方是純熟)”라고 했던 장원의 견해와 달리 “곧바로 소리가 없어지는 것을 결숙이라 한다(直至無聲 方是結熟)”라고 한 부분이다. 초의의 ‘순숙(純熟) - 결숙(結熟)’, ‘순숙 - 경숙(經熟)’의 입장은 물이 어느 순간이 되어야 물의 본색이 사라져서 탕수로 적합해지는지를 분별하는 방법의 차이를 나타낸 것이다. 순숙은 차를 우리기에 가장 적합한 상태의 탕수인데, 이는 탕변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결숙과 경숙으로 순숙을 분별한 차별성은 더욱 치밀한 연구가 요구되나, 탕변에 대한 초의의 관찰력은 삼매의 경지에서 연찬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실제 초의차가 삼매의 경지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그의 탕변에 대한 견해도 같은 입장에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차에 대한 탐구는 경화사족들에게 초의차가 극찬을 받게 한 요인이었다. (68~69쪽)

 

음다가 풍속에 사라진 18세기경에는 차를 약재에 섞어 풍(風), 한(寒), 서(暑), 열(熱), 감(感), 수(嗽), 체(滯)를 치료하는 약으로 활용했다. 이런 사례는 이운해(李運海, 1710~?)의 『부풍향차보(扶豊鄕茶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부풍은 부안의 옛 지명이다. 1755년에 부안현감으로 부임했던 이운해가 관아의 하인을 보내 차를 채취하고 7종의 약차를 만들어 감기나 풍, 한질, 더위, 기침, 체 했을 때, 병을 치료하는 약차를 만들었다. 이 기록은 차 문화가 사라진 시기에 차 산지에서 차를 약으로 활용하였던 실제 사례이다. 차 문화가 사라진 18세기 중순에 차를 약으로 활용했던 이러한 사례를 통해 차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시대적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19세기 초에 북학파를 중심으로 음다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양상을 보였다. 당시 선다(禪茶)의 명맥을 이어온 대둔사 승려들은 제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초의는 선다의 이론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차에 관심을 가진 경화사족들의 열망에 부응하였다. 이처럼 초의는 19세기 초에 차 문화의 흐름을 이끌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정약용이 보림사 승려들에게 차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는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의 주장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143~144쪽)

 

그렇다면 제다란 무엇이며 어떻게 발전되어 왔던 것일까. 제다(製茶)란 불이나 증기, 햇빛을 이용하여 찻잎의 독성을 중화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이 과정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차를 만들기 위한 필수 단계이다. 그런데 나라마다 차를 완성하는 공정이 조금씩 다르고, 혹은 전반적인 공정이 같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기후 풍토 및 기호에 따라 세부적으로 방법을 달리 하기 때문에 다양한 제다법이 있어 왔다. 국가별로 전통적인 제다법을 중시하여 문화유산으로 규정하는 연유도 전통 제다법이 그들의 오랜 역사와 더불어 차를 다루는 지혜가 축적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초의차는 초의가 명대의 제다 이론을 토대로, 조선의 실정에 맞춰 제다법을 완성하여 그 특징을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159쪽)

포법(泡法)이란 차를 우려내는 순서와 방법이다. 그 핵심은 다구(茶具)의 청결성, 적정한 차의 양, 차가 침출하는 시간의 적의성(適宜性)에 따라 차의 진미가 드러난다는 것이고, 이러한 탕법의 적절성을 중정(中正)이라고 한다. 초의가 “대체로 다관이 너무 뜨거우면 차의 기미가 드러나지 않고, 다호(茶壺)가 깨끗해야 물의 기운이 맑고 좋다”라고 하였는데, 이는 포법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설명한 것이다. 다도의 중정은 이런 조건이 적의해야만 실현된다. 그러므로 중정이 아닌 상태, 다시 말하면 다관이 너무 뜨거우면 차의 체(體)인 기미가 손상되어 차의 신(神)인 색·향·미가 온전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포법에서 과불급(過不及)이 없어야 차의 건(健)·영(靈)이 드러난다. 본체론으로 보면, 영(靈)은 차의 색·향·미가 겉에 드러난 차의 신이 고, 건(健)은 차의 내밀한 기운인 차의 체이다. 차를 담아두는 다호(茶壺)가 청결해야 물의 맑은 기운이 제대로 드러나서 차의 체가 발현된다. 그러므로 초의가 말한 중정은 포법의 핵심이며, 차의 체용(體用)이 드러난 세계이다. 이런 점에서 차를 만들고 탕법에 적용된 기준으로 넘치거나 미흡함이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초의의 중정은 『중용』에서 말하는 중정의 개념과는 다르다. (289~290쪽)

 

응송도 초의처럼 차 이론을 연구하고 몸소 차나무를 길러 차를 만들어 즐겼다. 이는 차의 이론과 실증을 겸비한 초의의 연구 방법이 응송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응송이 다포(茶圃)를 만들어 차 나무의 육종을 연구한 것이나 품천(品泉)을 연구하면서 차 문화 전반을 연구한 것은 초의에게서 연원된 것으로 1917년경 대흥사에서 유행된 탕법이라 생각한다.

응송은 평생동안 초의 다도 연구를 위한 문헌 수집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이를 토대로 차의 진실한 진리를 터득하려 하였다. 응송의 이러한 노력은 근현대로 이어진 초의차 제다법의 원형을 계승하여, 사원차의 원형을 보존함으로써 대둔사의 다풍이 후대로 이어졌고, 1985년에 필자(朴東春, 1953~ )에게 전해졌다. 응송은 필자에게 「전다수게」를 내려 그의 다맥을 전했다. (345~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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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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