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600년 동안 ‘부정의 논서’로 읽혀 온 『중론』을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다시 읽다
나가르주나의 『근본중론송』은 27품 449송으로 이루어진 불교의 핵심 논서이자, 이후 중관학파의 사상적 토대가 된 저술이다. 인도에서 시작해 티베트·중국·한국·일본으로 이어지며 불교 사상에 깊은 영향을 끼쳤지만, 동시에 가장 난해한 불교 논서 가운데 하나로 꼽혀 왔다.
『풀어쓴 중론—한국화본』은 이 오래된 텍스트를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다시 출발해 한국어로 읽어내는 책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중론』을 오랫동안 지배해 온 ‘부정’의 언어다. 구마라집의 한역 이후 ‘불멸불생(不滅不生)’은 흔히 “소멸하지 않고 생겨나지 않는다”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산스크리트 원문의 부정 접두사 a-/an-에 다시 주목한다. 이를 단순히 ‘~하지 않는다’라는 판단의 부정으로만 읽는 대신, ‘~이 없다’라는 부재의 의미로 읽을 때 『중론』의 모습은 달라진다.
“소멸하지 않는다”와 “소멸도 없다”는 같은 말이 아니다.
전자가 어떤 명제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는 ‘시비(是非)’의 언어라면, 후자는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보고 확인하는 ‘유무(有無)’의 언어다. 이 차이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유무시비론’이 출발한다.
이 관점에서 『중론』의 449송은 무언가를 끝없이 부정하는 논쟁의 연쇄가 아니다. 조건에서 찾아보고, 움직임에서 찾아보고, 인식과 자아, 시간과 인과, 사성제와 열반에 이르기까지 27가지 주제를 하나씩 고찰하면서 ‘스스로 있는 것’, 즉 자성(自性)이 실제로 발견되는지를 확인해 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예샤오융(葉少勇, 2011)의 산스크리트 교정교감본을 원전으로 삼아 구마라집 한역이나 티베트역을 중간에 두지 않고 한국어로 직접 옮겼다. 또한 나가르주나가 사용하는 결론의 표현을 ‘발견되지 않는다’, ‘있지 않다’, ‘성립하지 않는다’, ‘부합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겠는가’라는 다섯 유형으로 구분한다. 하나의 ‘부정’으로 평면화되었던 문장들을 각각의 논증적 기능에 따라 구별함으로써 『중론』을 보다 입체적인 고찰의 과정으로 되살린다.
또 하나의 특징은 ‘번역종합’이다. 압축된 산스크리트 게송을 단순히 직역하는 데 그치지 않고, 게송 안에 생략되어 있는 논리적 연결을 한국어 문장 속에 풀어 넣었다. 각 게송 뒤에는 다시 산문해설을 배치해 그 게송이 무엇을 살펴보고 있으며 27품 전체의 흐름에서 어떤 위치에 놓이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이 책에서 독자는 논쟁을 밖에서 바라보는 관전자가 아니라 나가르주나와 함께 ‘찾아보는’ 고찰의 동반자이자 연기법을 깨닫기 위한 중도의 수행자가 된다.
책은 먼저 서론 「중론의 문을 열며」에서 왜 『중론』을 다시 읽어야 하는지, 기존 번역이 무엇을 놓쳤는지, 유무와 시비는 어떻게 다른지, 원문의 다섯 가지 표현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를 설명한다. 이어 본론에서는 제1품 「관인연품」부터 제27품 「관사견품」까지 449송 전체를 ‘번역종합+산문해설’의 방식으로 따라간다.
그 여정에서 조건, 움직임, 인식, 오온, 생·주·멸, 행위와 행위자, 윤회, 괴로움, 자성, 속박과 해탈, 업과 과보, 자아, 시간, 인과, 여래, 사성제, 열반과 같은 불교의 핵심 주제가 차례로 고찰된다. 그리고 제24품에 이르면 “연기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공성이라 말한다. 그것은 의지하여 가설된 것이며, 그것이 곧 중도이다”라는 『중론』의 핵심적인 지점에 도달한다.
귀경게에서 출발한 『중론』은 27품 449송의 고찰을 지나 다시 결송의 경례로 돌아온다. 조건에서, 움직임에서, 인식에서, 자아에서, 시간에서, 열반에서 찾아보았으나 어디에서도 자성으로 스스로 있는 것은 발견되지 않는다.
『풀어쓴 중론—한국화본』은 『중론』을 단지 이해해야 할 고전 철학서가 아니라 직접 따라가며 확인하는 고찰의 기록이자 연기법을 깨닫기 위한 중도의 수행서로 읽는다. 산스크리트나 한문을 알지 못하는 독자도 나가르주나의 논증을 한국어로 따라갈 수 있도록 풀어내면서, 동시에 원전에 관심 있는 연구자에게는 새로운 번역과 해석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대상
- 『중론』을 처음 접하거나 기존 번역이 어렵게 느껴졌던 독자
- 중관사상, 공성, 연기, 중도 등 불교철학의 핵심 개념을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 단순한 철학적 논쟁이 아니라 수행과 직접 경험의 관점에서 『중론』을 읽고 싶은 독자
- 산스크리트 원전에 기반한 『중론』의 새로운 한국어 번역과 해석에 관심 있는 독자
- 불교학인도철학·중관학을 공부하거나 연구하는 학생 및 연구자
구성
산스크리트 원전 번역 + 게송별 산문해설 + 27품 전체의 수행적 고찰
특징
①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직접 출발한 한국어 번역
② ‘시비’에서 ‘유무’로 전환한 새로운 『중론』 읽기
③ 원문의 결론 동사를 다섯 유형으로 세분화
④ 번역과 해설을 결합한 ‘번역종합’
⑤ 27품 449송을 하나의 여정으로 읽는 구성
저자소개
최로덴
18세에 입산하여 의단에 기반한 선(禪) 수행을 시작한 이래, 다양한 수행 전통을 넘나들며 인도-티벳 전통의 무상요가를 완수한 수행자이자, 인도철학과 불교철학의 현밀체계 및 칼라차크라탄트라를 연구하고 강의한 학자(Ph.D.)이다. 인도불교 인식론(프라마나 전통)을 연구하여, 이를 기반으로 《디그나가의 집량론》을 완역하였으며, 《중론의 유무시비론적 연구》를 저술하였다. 《티벳불교의 향기》 《입보리행론》 《께따까(정화의 보석)》 《달라이라마의 지혜명상》 《역경학 개론》(공저) 등을 역저하였다. 40여 년의 수행과 학문이 만나는 자리에서, 붓다의 직접 경험(현량)과 제자들의 해석적 전통(비량)을 구별하면서 양자의 연기적 연속성을 밝히는 독자적 학문 체계 ‘붓다불교(Buddha-Buddhism)’를 수립하였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이 인식론적 틀이 현대 문명의 진단과 대안 설계에 기여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시대전환(X-Logy)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붓다불교(BB)와 인식학(Epistemics)’을 정립하였다.
- 개인연구소(BBI, IIE)를 통해 불교대전환(BX)을 위한 방편으로 붓다불교, 붓다와 제자들, 붓다불교 비밀요가(4차제요가), 풀어쓴 중론(한국화본), 불교의례학, 인식학 서설, 교육인식학, 교육명상학, 유무시비론, 교감현량론(제5현량론) 등에 대한 저술 활동과 ‘AI 특이점 인간’에 관련된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교육대전환(EX)과 문명대전환(CX)의 인식학적 기초와 직접 경험(pratyakṣa)에 기반한 수행적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목차
서문(序文) | 풀어쓴 『중론』
서론 | 중론의 문을 열며
제1장 왜 중론을 다시 읽는가
01 귀경게의 첫 음절—‘불멸불생’과 ‘멸도 없고 생도 없다’
02 1600년간의 중론 읽기—구마라집에서 현대까지
03 시비의 중론과 유무의 중론—두 가지 읽기
04 끝없는 부정인가, 봄의 기록인가
제2장 중론은 어떤 책인가
01 나가르주나와 그의 시대
02 449송이라는 형식—게송이란 무엇인가
03 27품의 구성—무엇을 찾아보는가
04 귀경게에서 결송까지—원환의 구조
제3장 기존 번역은 무엇을 놓쳤는가
01 경전 번역의 시작—경험에서 언어로, 언어에서 문자로
02 한역의 유산—구마라집과 현장, 두 거인의 선택
03 티베트의 실험—왕실이 만든 표준 번역
04 현대의 번역들—영어와 한국어 번역의 현주소
05 세 가지 공통된 한계—a-의 해석, 동사의 미분화, 원전의 거리
제4장 있는가 없는가를 묻다—유무시비론
01 시비란 무엇인가—맞고 틀림의 구조
02 유무란 무엇인가—있고 없음의 구조
03 붓다의 원래 표현—“있을 때 있다”
04 경전에서 논서로—시비화의 역사
05 나가르주나는 시비의 언어를 쓰면서 유무를 가리켰다
제5장 나가르주나의 다섯 가지 표현
01 “발견되지 않는다”—찾아본 결과의 확인
02 “있지 않다”—존재 자체의 부재
03 “성립하지 않는다”—논리적 불성립의 확인
04 “부합하지 않는다”—논리적 부정합의 확인
05 “어떻게 ~하겠는가”—물음 자체의 해소
06 다섯 표현의 누적—논쟁서에서 고찰의 기록으로
제6장 번역의 세 원칙
01 경전은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경험을 가리키는 언어
02 배제—원문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03 한정—원어의 의미 범위를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는다
04 가리킴—개념을 넘어 경험을 향하게 한다
05 한국어의 고유한 자원—‘봄’ ‘앎’ ‘있음’의 힘
06 ‘멸’과 ‘사라짐’—명사와 명사화의 선택
제7장 세 겹의 작업
01 첫 번째 층—원문을 한 글자씩 분석하다
02 두 번째 층—한 게송씩 풀어 이야기하다
03 세 번째 층—번역과 해설을 하나로 녹이다
04 세 층은 어떻게 서로를 비추었는가
05 풀어쓰기의 여섯 기법—독자를 위한 안내
제8장 이 책의 읽는 법
01 번역종합이란 무엇인가
02 산문해설이란 무엇인가
03 처음부터 읽을 것인가, 중간부터 읽을 것인가
04 대괄호 [ ]와 병기의 약속
제9장 27품의 여정
01 제1구역: 존재론적 기초의 해체 [제1~10품]
02 제2구역: 시간·변화·자아의 해체 [제11~14품]
03 제3구역: 존재론적 전환점 [제15~18품]
04 제4구역: 교리적 주제의 재해석 [제19~23품]
05 제5구역: 정점과 귀환 [제24~27품]
제10장 소결
01 귀경게—중론의 첫 숨결
본론 | 풀어쓴 중론 27품
제1품 관인연품(觀因緣品): 조건의 고찰
제2품 관거래품(觀去來品): 간 것·가지 않은 것·가고 있는 것의 고찰
제3품 관육정품(觀六情品): 처의 고찰
제4품 관오음품(觀五陰品): 온의 고찰
제5품 관육종품(觀六種品): 종의 고찰
제6품 관염염자품(觀染染者品): 탐욕과 탐욕자의 고찰
제7품 관삼상품(觀三相品): 생·주·멸의 고찰
제8품 관작작자품(觀作作者品): 짓는 이와 지음의 고찰
제9품 관본주품(觀本住品): 취하는 이와 취함의 고찰
제10품 관연가연품(觀燃可燃品): 불과 땔감의 고찰
제11품 관본제품(觀本際品): 윤회의 시간적 경계 고찰
제12품 관고품(觀苦品): 괴로움의 고찰
제13품 관행품(觀行品, 觀實品): 형성된 것의 고찰
제14품 관화합품(觀和合品): 만남의 고찰
제15품 관유무품(觀有無品): 자성과 유무의 고찰
제16품 관박해품(觀縛解品): 속박과 해탈의 고찰
제17품 관업품(觀業品): 업과 과보의 고찰
제18품 관법품(觀法品): 아와 법의 고찰
제19품 관시품(觀時品): 시간의 고찰
제20품 관인과품(觀因果品): 인과의 고찰
제21품 관성괴품(觀成壞品): 생성과 괴멸의 고찰
제22품 관여래품(觀如來品): 여래의 고찰
제23품 관전도품(觀顚倒品): 전도의 고찰
제24품 관사제품(觀四諦品): 사성제의 고찰
제25품 관열반품(觀涅槃品): 열반의 고찰
제26품 관십이인연품(觀十二因緣品): 12연기의 서술
제27품 관사견품(觀邪見品): 견해의 고찰
결어 | 중론의 여정을 마치며
부록
1. 핵심 술어 번역 대조표
2. 동사 유형 5분류 일람
3. 참고문헌
책속으로
나가르주나가 부정하는 것은 ‘스스로 있는 것들 사이의 연기’이다. 단단한 실체로서의 씨앗이 있고, 단단한 실체로서의 싹이 있어서, 하나가 다른 하나를 만들어낸다는 식의 인과론적 연기를 부정하는 것이다. 스스로 있는 것이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있는 것들 사이의 인과적 관계도 성립하지 않는다. 볏단이 서로를 기대어 서있듯 서로를 조건으로 의존하여 성립하다 그 조건이 사라지면 해체되는 것이다. 이 부정의 과정을 거친 자리에 비로소 연기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스스로 있음 없이 서로에 기대어 나타나는 것—그것이 진정한 연기이다.
— p.204
윤회를 떠나 열반에 가는 것이 아니라, 윤회와 열반이라는 분별 자체가 없는 곳이 적멸이다. 귀경게의 ‘희론이 적멸한 묵연의 경지’는, 윤회와 열반이라는 분별마저 내려놓은 자리이다. … ‘열반은 나의 것이 되리라’고 집착하는 것이 가장 큰 집착이라는 선언. 윤회에서 벗어나려는 것이 윤회에 묶이는 것이고, 해탈을 얻으려는 것이 해탈을 가로막는 것이다. 나가르주나는 이 역설을 논리적으로 보여줄 뿐 아니라, 수행자의 마음에 직접 이심전심의 말을 건넨다. 놓아야 할 것은 윤회만이 아니다. 열반을 향한 집착도 함께 놓아야 한다.
— p.470~472
“연기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공성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다른 것에 의지하여 가설된 것이며, 그것이 곧 중도이다.” 중론 전체의 정수이다. 이 한 게송이 중론 27품 449송의 핵심을 담고 있다.
— p.672
윤회란 무엇인가. 태어남과 죽음이 반복되는 것이다. 고(苦)의 세계이다. 번뇌에 의해 업이 지어지고, 업에 의해 과보가 생기며, 과보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끝없는 반복이다. 열반이란 무엇인가. 이 반복에서 벗어난 것이다. 고가 소멸한 경지이다. 번뇌의 불꽃이 꺼진 것이다. 이 둘 사이에 조금의 차이도 없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 윤회에도 자기 본성이 없고 열반에도 자기 본성이 없다. 양자에 자기 본성이 없다는 점에서, 양자는 같다. 윤회의 본성이 곧 열반의 본성이고, 열반의 본성이 곧 윤회의 본성이다. 조금도 차이가 없다.
— p.718~719
| 발행일 | 2026. 7. 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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