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와 마르크스의 공생을 그려 본다

인간 고통에 대한 고뇌와 성찰, 존재론적 평등과 계급적 평등, 사상과 사유체계를 풀어가
는 방식, 절대적 존재에 대한 반론, 공유의식에 대한 관점 등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른 듯
같은 지점으로 향해가는 두 사상을 비교한다.

자신의 시대에서 극렬하게 인간의 고통과 소외에 주목한 인간적 사상가,
시대의 오류를 통찰하고 개혁하기 위해 울부짖은 행동가,
보다 근원적인 행복과 평등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누릴 수 있도록
세상을 향해 맞선 철학가,
2600여 년 전 석가모니와 200여 년 전 마르크스의 만남!
현대의 탁자에 마주 앉아 이 두 사상가는 다시 세상을 향해 무엇을 외칠 것인가!
석가모니와 마르크스 모두 고통이라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 성찰을 하며 해결책을 시도했다. 그들 모두 고통에
대해서는 같은 문제의식을 지녔지만, 그 원인을 찾고 고통을 해소하는 방식에서는 차이가 났다. 즉 석가모니는
고통의 원인을 인간 자신의 내부에서 찾았고, 이를 해소하는 길은 마음에서 나온다 했다. 마르크스는 고통의 원
인을 외부에서 찾았고, 이를 노동 과정의 혁신이라는 외부적 환경과 경제적 조건에서 찾고자 했다. 석가모니가
인간에 대한 자비와 사랑을 깔고 있었다면,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비판과 부정을 깔고 있었다. 석가모
니가 나 자신의 성찰을 통한 고통의 완화를 추구했다면, 마르크스는 경제 환경과 구조, 특히 노동의 조건과 과정
을 바꾸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고통의 해결 방식에 있어서 이를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외부와 내부 또는 정신과 육체는
따로 떼어내서 생각할 수 없다. 석가모니의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이라는 행이나, 몸과 마음, 정신적 행과
육체적 행위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는 이런 문제들을 변증법적 방식으로 해결코자 했다. 변증
법적 유물론과 사적 유물론은 인간 행동과 행위를 외부와 내부, 몸과 마음, 양과 질, 부정의 부정 등의 방법을 통
해 인간의 역사에 적용한 것이다.
삶의 풍요로움이란 물질적 부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풍요로움에는 정신적인 측면과 물질적 측면이 함께 포
함돼 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을 최대한 끌어올려 소비를 극대화하는 체제이다. 정신적 풍요와 물질
적 풍요는 상호관계적이다. 물질적 집착은 마음으로 다스릴 수 있다. 어떠한 행위, 그것이 정신적 행위적이건 육
체적 행위이건 간에 이를 제어하고 다스리는 것은 마음이다. 불교에서 ‘무소유’를 거론하곤 하는데, 이보다 더 중
요한 것은 ‘무집착無執着’이다. 무소유도 중요하지만, 욕망이나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석가모니
의 정신적 행은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고, 마르크스의 신체적 행은 물질적 평등을 가져다준다.
이 책은 석가모니와 마르크스 사유의 공통점을 찾는 데에 초점을 맞추었다. 먼저 이들의 사상과 사유에서 공유와 공생의 가능 여부를
타진해 보았다. 다음은 석가모니와 마르크스의 평등사상을 그들이 살았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조망해 보았다. 석가모니와 마르크스 모두
근원적 평등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다음으로 그들의 사유와 사상 체계를 비교해 보았다. 두 사람 모두 형이상학과 형식논리학을 배제하였
다. 그들은 물질과 정신의 관계, 몸(육체)과 마음(정신)의 관계, 대상과 인식의 관계, 육체적 행위와 정신적 행위의 관계에서 물질과 정신의
상호관계성을 중시했다. 이 물질과 정신의 관계에서, 석가모니는 물질과의 접촉 후에 이루어지는 정신적 측면에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
였고, 마르크스는 물질적 접촉 후의 사회적 존재나 대상, 특히 경제적 관계에 치중하였다. 이런 부분들 때문에 불교는 관념론으로, 마르크
스주의는 유물론이라 불리기도 했다. 나는 이 둘의 관계를 단선적이거나 기계적으로 보는 데에 반대한다. 물질과 정신의 관계, 대상과 인
식의 관계 그리고 몸과 정신의 관계는 이분법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이 둘의 관계는 상호관계적 또는 변증법적 관계이다.
-머리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