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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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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호 / 사색

저자 : 김흥호

1919년 황해도 서흥출생
1944 와세다 대학 법학부 졸업
1947 국학대학 철학교수 정인보선생 사사
1948 다석유영모선생 사사
1954 진리를 깨닫고 체득한 경험 후 중용 대학등의 우리말 풀이 시작
1955 이화대학 철학, 종교학 교수
1965 연경반을시작하여 동양 고전 및 성경 강의
2006 현재 41년째 연경반 강의 노자강의 계속 진행 중임

"부처님은 자신을 안 사람입니다. 노자도, 공자도, 예수님도 모두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그들의 경전을 읽는 것은 그 속에서 남이 아닌 바로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미수(米壽.88세)의 김흥호 목사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면 이화여대 교회 지하강당에서 동양사상을 강의한다. 이화여대 교목을 지낸 김 목사는 요즘 '노자 도덕경'을 가르친다. 1965년 시작해 40년이 넘게 이어져온 강의다. 제자들이 그의 강의를 녹음해 두었다가 하나 둘씩 책으로 펴내고 있다.

최근에는 불교경전 가운데 가장 방대한 화엄경을 쉽게 풀어낸 '화엄경 강해'(전3권.사색)가 출간됐다. 3월에 시작된 노자 강의를 4월 말에 끝내고 5월부터는 기독교로 돌아가 성경을 강의할 예정이다.

김 목사가 동서양의 경전과 종교서적을 두루 섭렵하는 것은 '종교와 종파, 철학과 학파를 초월해 개개인이 내면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을 '눈 뜬 사람'으로 표현한다. 진리에 눈 뜬 사람이란 뜻이란다.

"불교에선 피안(彼岸)이라 하고, 기독교에선 하늘나라라고 하지요. 저는 이상세계라고 부릅니다. 이상세계는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형이상학적입니다. 눈 뜬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가 이상세계지요. 눈 뜬 사람이 되기 위해선 눈 뜬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그가 만난 '눈 뜬 사람'은 다석(多夕) 류영모(1890~1981)다. 다석은 유교.불교.도교 등 동양의 전통 3교에 기독교까지 섭렵한 사상가다. 그에게 다석을 소개해준 사람은 춘원(春園) 이광수다.

황해도 서흥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김 목사는 평양고보와 와세다대 법학부를 졸업했다. 해방 후 월남해 춘원을 찾아갔다. 춘원은 "나는 친일한 사람으로 스승의 자격이 없다"며 대신 두 사람을 추천해줬다고 한다. 다석과 국학자인 위당(爲堂) 정인보였다. 김 목사는 우선 위당으로부터 양명학을 배운 다음 다석을 찾아가 6년간 동서양 경전을 사사했다. 55년부터 84년까지는 이화여대 기독교학과 교수를 지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 중앙일보 4월5일자 기사 -

 

목차

  • 제1. 세주묘엄품世主妙嚴品
    제2. 여래현상품如來現相品
    제3. 보현삼매품普賢三昧品
    제4. 세계성취품世界成就品
    제5.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
    제6. 비로자나품毘盧遮那品
    제7. 여래명호품如來名號品
    제8. 사성제품四聖諦品
    제9. 광명각품光明覺品
    제10. 보살문명품菩薩問明品
    제11. 정행품淨行品
    제12. 현수품賢首品
    제13. 승수미산정품昇須彌山頂品
    제14. 수미정상게찬품須彌頂上偈讚品
    제15. 십주품十住品
    제16. 범행품梵行品
    제17. 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
    제18. 명법품明法品
    제19. 승야마천궁품昇夜摩天宮品
    제20. 야마궁중게찬품夜摩宮中偈讚品
    제21. 십행품十行品
    제22. 십무진장품十無盡藏品
    제23. 승도솔천궁품昇兜率天宮品
    제24. 도솔궁중게찬품兜率宮中偈讚品

 

책 속으로

화엄경華嚴經을 보면 높은 히말라야 산을 연상하게 된다. 하얀 만년설에 뒤덮인 높고 큰 히말라야의 설산은 숭엄하기가 짝이 없다. 아침 해와 저녁놀에 붉게 물들어 금빛으로 빛나는 봉우리들은 이제 막 피어나는 연꽃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산을 뒤덮은 눈과 얼음이 녹아내려 흘러가는 수많은 강물들은 드넓은 대륙을 푸른 물결로 수놓아 간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생명들이 뛰놀고 있다. 빛과 힘과 숨, 이것이 화엄의 모습이다.
의상義湘은 화엄 80권을 210자로 간추리고 원효元曉는 “일도출생사一道出生死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라는 한마디로 덮어버린다. “일도一道”는 “화華”요 “출생사出生死”는 “엄嚴”이요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은 “경經”이라는 것이다. 일도는 유심연기唯心緣起요, 출생사는 불佛이요, 일체무애인은 이실법계理實法界를 말한다. 선禪에서는 이것을 간단히 심불물心佛物이라 한다.

화엄경은 세주묘엄품으로 시작한다. 눈 덮인 수많은 봉우리들이 불타인 에베레스트를 찬양하는 장엄한 히말라야의 모습이 세주묘엄이다.
히말라야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강물은 대지를 적시어 푸른 초원으로 탈바꿈하여 연꽃이 만발하는 화장세계로 만들어 간다.
그리고 절대자를 찾아가는 구도자의 모습은 선재동자로 그려진다.
구도자의 얼은 십신十信․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십지十地․등각等覺․묘각妙覺 등으로 그 얼을 단련해 간다. 그것이 유심연기唯心緣起다.
하늘의 수많은 수증기가 눈과 얼음으로 굳어가는 얼의 빛나는 모습이다.
화엄경은 대부분이 그렇게 얼음이 얼어가는 얼의 이야기다.
그래서 화엄경을 얼의 경전, 지혜의 경전, 자각의 경전이라 부르기도 한다.
심불물의 화엄경은 심학心學이 주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심종心宗인 선과 통하기도 한다. 화엄종의 제5조인 종밀宗密이 또한 선종禪宗의 제11조가 되지 않았는가. 우리나라는 화엄종의 제2조를 계승한 의상 덕분에 화엄 9찰이 전국에 세워져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불도佛道를 탐구하기 위하여 53선지식을 찾아 헤매며 칼산에 오르기도 하고 불구덩이로 뛰어내리기도 하는 선재동자처럼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이들이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정성을 쏟아 붓는 그 열정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면서 화엄경의 주요 줄거리를 쉬운 우리말로 풀어본다.

 

출판사 서평

불교경전 중에서 우리 불교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화엄경 80권에 대한 김흥호 선생님의 강의해설이 화엄경 강해 3권으로 도서출판 사색(www.naalla.com)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난 2000년부터 3년여에 걸쳐 진행된 김흥호 선생님의 강의 내용을 그대로 옮긴 것이기 때문에 우선 읽기가 쉽고 재미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김흥호 선생님의 독창적인 해설과 풀이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난해한 화엄경의 높고 높은 봉우리를 힘든 줄 모르고 어느새 올라서게 되는 큰 기쁨을 누릴 수가 있을 것이다.
화엄경 원본에는 60권 화엄경, 40권 화엄경 및 80권 화엄경이 있는데 그 가운데 80권 화엄경을 근간으로 하여 강의가 이뤄졌다. 강의교재는 80권 화엄경을 기본으로 하고 탐현기(법장), 신화엄경 합론(이통현, 탄허 역) 등의 주요 화엄경 주석서에서 발췌한 것을 사용하였다.
지금까지의 어떤 화엄경 해설서보다도 명료하고 신선한 현대 감각으로 해설한 이 책의 특징은 한없이 깊고 높은 화엄사상을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여 김흥호 선생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전하고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어 준다는 점이다. 화엄경 40품에 대해 각 품의 핵심사상과 의미를 요령 있게 간추려 해설하면서 80권 화엄경 전체의 심오하고 미묘한 사상을 일관되게 꿰뚫어보는 김흥호 선생님의 명쾌하고 절묘한 해설을 통하게 되면 누구나 원효나 의상과 같은 화엄 종사들과 소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부처의 더없이 높은 궁극적인 가르침과 미묘한 깨달음의 경지도 여실히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암담한 우리 현실에서 바라볼 수 있는 희망의 이상이 어디에 있는지, 불안한 이 시대에서 우리의 갈 길과 사명은 무엇인지, 인생의 의미와 인격의 존엄성이 얼마나 깊고 높은 것인지, 진지하게 숙고하는 이라면 누구나 다 이 화엄경 강해 3권을 통해 우리의 이런 실존적 근본 물음에 대한 모든 해답의 실마리를 찾아낼 것이다.
화엄경의 맨 첫 장이 세주묘엄품이다. 세주의 모습이 한없이 신비하고 장엄하다는 것이다. 수천 미터 높이로 우뚝 솟은 히말라야의 영봉들이 새하얀 만년설에 뒤덮이어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티 없이 맑게 빛나는 모습을 바라볼 때 감격하지 않을 이가 어디 있을까. 대자연의 장엄하고 깨끗하고 신비한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몰래) 입을 벌리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찔한 순간의 충격, 허공으로 붕 떠올라 모든 것이 투명해지는 그런 느낌, 그런 감격의 순간을 어떻게 형용할 수 있을까.
화엄경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이름이 익숙하지만 실제로 그 책을 들여다본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책의 분량도 방대하고 또 한문으로 된 책이라 읽기도 어렵다. 우리말로 해석하고 해설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지만 화엄경은 왠지 난해하고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하고 있어 선뜻 다가서기가 어려웠다. 한때 시중에 화엄경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선재동자의 구도행각을 소설로 그린 책으로서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소설화한 것이었다. 그 소설을 읽어봐도 별로 기쁨이나 시원함을 느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화엄경을 해설한 책들은 너무 어려운 전문 용어들로 가득 차서 계속 읽어 나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김흥호 선생님(교수)의 화엄경 강해를 접하는 순간 화엄경이 주는 그 매력에 푹 빠지고 말았다. 화엄경은 맨 처음에 세주묘엄이라는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언뜻 보여주고는 그 다음부터 한발 한발 인도하여 차츰차츰 높고 높은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렇게 하여 자기도 모르게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게 되는데 어느 한 순간도 눈을 팔래야 팔 수 없도록 끌고 가는 어떤 매력이 있었다. 미묘하고 현묘한 신비의 형이상의 세계로 이끌어가는 그 방법이 아주 절묘하고 교묘하여 지혜롭기가 짝이 없다는 말이다.
화엄경에서 제시하는 방법은 53단계로 올라가라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려내는 것이 입법계품이다. 또한 이것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만나서 보살도와 보살행을 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보살도와 보살행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달리 말해서 진리와 생명의 길이라 할 것이다. 선재동자가 구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진리가 무엇인지, 생명을 얻는 길이 무엇인지 그것을 구하는 것이다. 도道는 진리요, 행行은 길이요, 보살은 생명을 말한다. 진리의 빛과 생명의 힘을 구하는 것이다. 진리의 빛과 진리의 힘이 합해져 사는 것이 생명이요 보살이다.
진리의 빛을 보살도라 하고, 진리의 힘을 보살행이라 한다. 이 보살도와 보살행을 얻고자 발심하는 계기는 선재동자가 문수보살을 만남으로 비롯된다. 대승기신大乘起信이다. 큰 스승을 만나야 믿음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문수보살이라는 큰 스승을 만나서 저절로 발심이 나온 것이지 선재동자가 발심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맨 처음 문수보살의 한없이 빛나는 그 모습을 보고 선재동자는 보살도와 보살행을 구하겠다는 발심이 일어나 자기도 모르게 구도의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선지식을 만나서 배우고 배우며 보살도와 보살행으로 올라간다. 진리를 구하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는다. 칼산에 오르기도 하고, 불구덩이에 뛰어들기도 하면서 갖가지 경험과 다양한 스승들을 만나 가르침을 구한다. 그러다 마침내 맨 처음에 만났던 그 문수보살을 다시 만나고 보현보살을 만나고 부처를 만나게 된다.
문수보살은 보살도의 화신이요, 보현보살은 보살행의 화신이다. 이 둘이 합쳐진 분이 부처요, 모든 보살들, 일체 생명을 살려주는 분이 또한 부처라는 존재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심心과 불佛과 중생衆生이 무차별이라 한다. 우주의 마음도 대자대비의 마음이요, 부처의 마음도 대자대비의 마음이요, 보살이 사는 것도 대자대비의 마음 때문에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한다. 일체가 오직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떤 마음인가. 대자대비의 마음, 사랑의 마음이다. 일체가 사랑이라는 것이다. 우주도 사랑이요, 사람도 사랑이요, 만물도 사랑이다. 모든 존재가 다 사랑의 존재다. 이것을 또 유심연기唯心緣起 청정장엄淸淨莊嚴 이실법계理實法界라 말하기도 한다. 유심연기란 우주가 다 사랑의 세계라는 것이요, 청정장엄이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모습이 깨끗하고 장엄하다는 것이요, 이실법계는 부처를 따르는 중생들의 모습이 한없이 진실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선재동자가 이렇게 53선지식을 만나 보살도와 보살행을 구하는 과정을 화엄경 전체로 보면 십신十信과 십주十住와 십행十行과 십회향十廻向과 십지十地와 등각等覺과 묘각妙覺으로 설명한다. 말하자면 보살도를 이루는 과정을 시간적으로 보여주는 것인데 주역으로 말하자면 춘하추동이라는 것이다. 춘하추동이란 또 신해행증信解行証을 말하는 것이다. 신해행증이란 또 달리 말해서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타佛陀를 말하는 것이다.
성문 연각 보살 불타를 장자莊子의 표현으로 말하면 귀가 뚫리고, 눈이 뚫리고, 코가 뚫리고, 입이 뚫린다고 한다. 귀가 뚫리면 성문이라 하고, 눈이 뚫리면 연각이라 하고, 코가 뚫리면 보살이라 하고, 입이 뚫리면 불타라 한다. 사성제품에서는 이것을 고집멸도라는 말로 해설하고, 보살문명품에서는 인연법계로 설명하고, 십지품에서는 팔정도와 십신十身으로 설명한다. 십신이란 중생신, 국토신, 업보신, 성문신, 독각신, 보살신, 여래신, 지신, 법신, 허공신이라는 열 계단을 말한다.
이것은 춘하추동의 변화로도 볼 수 있는데, 사계절을 다섯으로 나눠서 각 계절마다 다시 10개의 계단으로 나눈다. 그래서 50계단으로 말하는 것이 십신 십주 십행 십회향 십지라는 것이다. 이 50계단을 거쳐서 등각 묘각을 넘어서면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부처의 높은 경지를 말하기 위해서 화엄경은 히말라야에 비유한다. 말하자면 공간적인 비유로 설명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주묘엄품에서 히말라야의 장엄한 모습을 보여주고 한발 한발 인도하여 차츰 높은 세계로 이끌어간다.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으로 끌어올려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도리천에서 더 올라가 허공의 해 달 별의 야마천 도솔천 자재천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주고, 더 올라가 욕계 색계 무색계를 넘어선 불가사의한 세계를 보여준다. 그래서 비로자나 부처님이 사는 그 세계가 얼마나 높고 밝고 아름다운 빛의 세계인지를 보여준다.
화엄경은 이와 같이 부처의 높고 위대한 경지를 보여주며 우리로 하여금 보살도와 보살행의 길로 이끌어 가는데, 이처럼 시간적 공간적 인간적 표현으로 겹쳐서 설명하는 이유는 그 보살도와 보살행이라는 것이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하나로 합쳐진 고차원의 세계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진리의 빛과 힘으로 사는 생명의 세계는 시간 공간 인간을 넘어선 세계라는 것이다. 시간적인 표현 속에 공간과 인간이 다 들어가 있고, 공간적인 표현 속에는 또 시간과 인간이 다 들어가 있다. 또한 시간 속에 인간과 공간이 들어가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 속에 또다시 시간과 공간이 들어가 있는 것이다. 달리말해서 시간은 공간과 인간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고 공간은 시간과 인간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으며 인간은 시간과 공간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 합해진 고차원의 세계는 밝고 투명한 수많은 구슬들이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고 비치는 것처럼 중층적이고 중첩적이고 인드라 그물망이라는 고차원의 연기적 세계가 된다. 그런 중중무진의 법계연기를 상즉상입, 일즉일체, 일심법계, 화엄법계 등등 다양한 표현을 하지만 사실은 간단히 말하여 심, 불, 중생이 무차별이라는 일도一道의 세계, 즉 사차원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일도의 세계는 곧 일승의 세계요, 무진법계의 세계가 된다. 의상이 말하는 일승화엄법계인데, 또한 주역으로 말하면 무극 태극 양의라는 형이상이다.
결론은 원효가 말하는 것처럼 일도一道 출생사出生死 일체무애인一切無碍人이라는 한마디로 표현된다. 진리의 빛과 진리의 힘으로 사는 자유의 세계가 우리들의 실재요, 진실한 실존들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진리의 빛으로 깨끗하게 깨어나서 진리의 힘으로 힘차게 솟아나 일체의 거짓과 어둠을 벗어버리고 진리의 말씀을 자유롭게 숨 쉬며 사는 진실한 모습이다. 이렇게 깨끗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모습으로 우리를 변화시켜주는 그 신비함이 바로 화엄경의 공덕이라는 것이다.
신라시대 의상과 원효가 화엄경에 그토록 매력을 느낀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 당시 삼국이 갈라져 사람들은 수많은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시달릴 대로 시달리고 있었다. 전쟁이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비참하고 비극적인 인간의 재앙이다. 온갖 잔인한 살육의 광란으로 인간의 마음은 갈가리 찢겨지고 영혼은 황폐화 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불심이 가득한 원효와 의상 같은 보살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상처받은 영혼들을 달래주고 찢겨진 마음의 상처를 싸매주며 고아처럼 방황하는 넋들을 위로하고자 얼마나 노심초사했을 것이며, 그런 그들의 자비심은 또한 얼마나 컸겠는가. 사이비(작은) 영웅들이 나타나 서로 통일하겠다고 전쟁을 일으키는 그런 아수라장 같은 난리를 보며 그들의 가슴은 얼마나 아팠을까. 소위 세상의 영웅들이라는 악귀 아수라들을 불심으로 조복하여 온 세상이 평화롭고 평등하며 한 마음으로 화합된 일심법계의 아름다운 불국이 되기를 염원하지 않았을까. 상즉상입의 이사무애법계와 사사무애법계가 실현된 화엄불국의 이상을 심어 우리가 사는 것은 정치적인 이 세상이 아니라 보다 크고 높은 여래장의 인류의식과 일체유심의 우주의식이 지배하는 중중무진의 연기법계임을 보이고자 염원하지 않았을까.
천년이 훨씬 지난 오늘날이지만 우리의 영혼의 상태는 어떠한가. 기술의 장난감과 물질적 탐욕에 눈이 어두워 우리의 영혼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것 아닌가. 이렇게 불모의 사막처럼 황폐해진 영혼과 메마르고 갈라 찢겨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오늘도 여전히 변함없는 신비의 약효를 지니고 풍성한 생명의 빛을 던지고 있는 화엄경을 찾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2006년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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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6.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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